정치부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책임지지 않는 민주당의 모습도 비겁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요. 야권연대가 아니었다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민주당 안팎에서 '이석기 사태'와 관련해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최근 최고위회의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민주당에 일면 책임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책임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아직까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진성준 의원이 조 최고위원의 발언을 "새누리당의 정치공세에 부화뇌동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친노 대 비노' 갈등이 표면화하는 데도 반응이 없다. 도리어 "당시는 통진당의 실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없었고 이명박 정권 심판을 위해 진보진영의 대통합이 필요했다"며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난해 4ㆍ11 총선 과정을 복기해 보면 민주당이 책임론을 외면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당시 민주당과 통진당의 선거연대에 대해 '묻지마 야권연대'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란 명분을 앞세운 민주당은 통진당과 공동정책합의문을 발표했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했다. 사실상 통진당의 당론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행 전면 반대를 수용한 때문이다.
당시 통진당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조차 변명에 불과하다. 통진당 당권파의 종북주의는 이미 2008년 불거져 민주노동당 분당으로 이어졌다. 통진당이 4ㆍ11총선을 앞두고 국민참여계와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와 손을 잡기는 했지만 경기동부연합의 종북세력은 여전히 당권파로 행세했다. 민주당은 이런 통진당과 연합하면서 통진당 당권파 '얼굴마담' 격인 이정희 대표에게 서울 관악을 지역구를 배려하는 등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책임론을 인정하는 순간 대치정국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밀릴 것을 우려할 수도 있다. 국정원 개혁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 도움 없이 통진당이 국회 교두보를 달성했으리라고 보는 일반 국민은 거의 없다는 점을 민주당은 간과하고 있다. "이석기 보다 국정원이 더 큰 죄"란 식의 접근으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종북세력과 단절'을 포함한 분명한 선 긋기 입장이 나오지 않는 한 새누리당의 무차별한 정치공세를 막는 것도 역부족이다.
민주당이 이번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해 총선에서 종북세력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판단오류는 인정해야만 한다. 정치인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근대 사상가 막스 베버는 정치와 윤리의 문제를 설파하면서 '신념'의 윤리가 아닌 '책임'의 윤리가 수반될 때 바람직한 정치 운영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