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언했던 대로 초구는 직구였다.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공을 던지는 배짱은 여전했다. 한국 나이로 어느덧 서른 여덟 살. 1995년 해태 유니폼을 입고 처음 프로무대에 섰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이다. 하지만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선 임창용(37)은 18년 전 풋내기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 세월은 흘렀어도 강심장은 변하지 않았다.
임창용이 마침내 빅리그에서 공을 뿌렸다. 임창용은 8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홈경기에서 3-4로 뒤진 7회초 1사 후 마운드에 올라 0.2이닝 동안 3타자를 상대했다. 안타 1개, 볼넷 1개를 내주면서도 3번째 타자를 병살타로 처리해 무실점으로 데뷔전을 마쳤다. 홈 팬들은 처음 접한 '한국산 뱀직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1군에 합류한지 이틀 만에 출격 명령을 받았다. 비교적 여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할 것으로 보였지만, 한 점 차 '시소 게임' 중에 호출이 떨어졌다. 등번호는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에서 달았던 12번. 유니폼 색깔만 바뀌었을 뿐, 몸을 살짝 뒤로 젖혀 와인드업 한 뒤 이내 유연한 투구폼으로 공을 던지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첫 타자에게 던진 공은 직구였다. 오른손 대타 숀 할턴을 상대로 시속 91마일(약 146㎞)짜리 속구를 던졌다. 공이 타자 몸쪽 낮게 형성되며 볼 판정을 받았지만, 움직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은 뱀처럼 휘는 직구에 투심 패스트볼로 표기 했다.
긴장한 탓인지 할턴에겐 볼넷을 내주고, 다음 타자 아오키 노리치카에겐 우전 안타를 맞았다. 1사 1ㆍ2루 실점 위기. 아오키는 야쿠르트에서 4년 간(2008~2011)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임창용은 볼카운트 3볼-1스트라이크에서 5구째 속구를 던졌다가 좌전 안타를 맞았다. 다행히 3번째 타자인 진 세구라에게 초구 투심 패스트볼로 유격수 땅볼 병살 플레이를 유도,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내고 7회를 무실점으로 마쳤다.
임창용은 이날 총 14개의 공을 던져 그 중 7개를 스트라이크존 안에 넣었다. 14개 공 가운데 13개는 속구 종류(포심 패스트볼 4개, 투심 패스트볼 9개)였다. 유일한 변화구는 아오키에게 던진 3구째 체인지업. 직구 최고 시속은 93마일(약 150㎞)이었고 직구 평균 시속은 90.46마일(약 146㎞)이었다.
임창용은 이로써 1994년 LA 다저스에서 데뷔한 박찬호 이후 빅리그 그라운드를 밟은 14번째 한국인 선수가 됐다. 또 이상훈, 구대성, 박찬호에 이어 4번째로 한국·미국·일본 프로야구에서 모두 뛴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컵스 구단으로는 1901년 이후 컵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투수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가 됐다.
임창용은 경기 후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1점 차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 같다"며 "첫 번째 공은 직구였다. 첫 타자에게는 직구만 던졌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 후 재활을 시작한 것이 14개월 됐다. 100% 회복된 것 같지는 않고 80~90% 정도라고 느끼고 있다"며 "남은 기간이 있으니까 차근차근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덧붙였다. 오늘 보다는 내일, 올해 보다는 내년이 더 기대되는 임창용이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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