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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9월 9일] 전직 대통령들 의혹 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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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9월 9일] 전직 대통령들 의혹 털기

입력
2013.09.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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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신문의 워싱턴 특파원은 한국의 재미동포들이 참 대단하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묻자 H마트 얘기를 꺼냈다. 미국에 온 아시아계 가운데 현지인들을 상대로 H마트처럼 큰 마켓(시장)을 운영하는 이민자는 한국인들이 거의 유일하다는 격찬이었다. 신선한 청과로 유명한 H마트는 최대 아시아계 마켓으로 불릴 만큼 미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H마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정황이 있다는 국내 보도가 얼마 전 나왔다. 교민사회는 벌집 쑤신 듯했고, 올 것이 온 게 아니냐는 반응이 없지 않았다. 보도 이전에도 일부 교민들이 "H마트는 전두환 거라서 이용하지 않겠다"는 말을 내놓고 할 정도로 H마트는 소문의 한 가운데 있었다. 얼마 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숨겨진 재산을 찾고 있는 검찰이 H마트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이 문제는 해프닝으로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미국 발 소문이 언제든 한국에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보여준다. H마트의 권일연 대표이사가 1982년 뉴욕에 처음 점포를 열 때부터 '전두환 귀신'에 시달려 왔다고 토로했지만, 이번 보도와 유사한 유형의 소문은 교민사회에서 끊이질 않았다. 지금 검찰이 캐고 있는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미국 재산 의혹도 실은 수년 전부터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미국 교민사회에는 소문이 많고 소문의 생명력도 길다. 그 가운데 가장 질긴 것은 이번 H마트처럼 한국의 전직 대통령 또는 그 일가와 관련된 얘기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데, 아들 현철씨의 자금이 교민기업 H에 유입됐다는 말이 있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딸 정연씨가 뉴저지 주에 고급 아파트를 샀다가 큰 곤욕을 치른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이른바 DJ 비자금 관련 의혹은 단골 메뉴에 속한다. 이 문제를 추적해온 현지 언론인은 아직 수사기관에서 이 사안을 덮지 않았고, 한국의 권력은 얼마 전 까지도 이를 활용하려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어떤 전직 대통령은 스위스 은행 계좌에 얼마를 예치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솔직히 기자가 들어보지 못한 미국 발 소문은 노태우 전 대통령 관련 얘기가 거의 유일하다.

교포 개인이 겪은 경험담이나 소문에서 시작해 의혹으로 진화하는 이런 얘기들은 세인의 높은 관심도나 사안의 폭발성 때문에 사그라지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수사기관이 의혹해소 차원의 전직 대통령 조사를 한다면 정치적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역학관계에서 전직 대통령 측들은 서로 의혹을 캐거나 확인하지 않는 이상한 힘의 균형을 이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전 전 대통령 측이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밀린 1,672억원을 모두 내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런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사가 자식과 친인척으로 확대되자, 전씨 측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살겠느냐며 낙향까지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전씨 측이 스스로 깨끗해졌다고 믿는 순간 어떤 카드를 꺼내 들지 알 수 없다. 그게 아니라도 또 다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 청산 작업은 불가피해질 수 있다. 아직 성급해 보이지만 다음 차례는 누구라는 식의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한다. 미국 전직 대통령들을 보면 재산은 별로 없어도 돈이 생기면 공익사업에 기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 때 집이 없어 임대 창고에 짐을 보관했던 빌 클린턴, 조지아 주의 조그만 집에서 연금으로 살아가는 지미 카터를 비롯 로널드 레이건, 리처드 닉슨 등은 재산을 긁어 모아 기념관 건립 등에 내놓았다. 우리 시대의 야만인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행동은 하나의 답일 수 있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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