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몇 곡의 레퍼토리를 연주하러 한국에 온 게 아니다. 한국의 훌륭한 작곡가 윤이상의 곡을 알리기 위해 왔다."
오보에 연주자이면서 작곡가, 지휘자이기도 한 하인츠 홀리거(74)가 6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ECM페스티벌 마지막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5일 만났다. 이날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윤이상의 오보에협주곡을 연주하는 그는"한국에서 윤이상의 음악이 자주 연주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위스 태생으로 제네바(1959), 뮌헨(1961) 국제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홀리거는 완벽한 테크닉으로 연주법을 확장시켜 루치아노 베리오, 한스 베르너 헨체, 비톨트 루토스와브스키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준 연주자다. 윤이상과 친분이 깊었던 그는 1977년 이탈리아 실내악단 이무지치 단원으로 내한한 이후 한국에서 수 차례 더 연주 기회를 가졌다.
"윤이상이 한국에서 추방된 1970년부터 아내 우르줄라(하프 연주자)와 나는 그와 매우 가까운 친구가 됐어요. 그가 우리를 위해 쓴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이중 협주곡'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죠."
그는 한국인들이 왜 윤이상의 음악을 어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윤이상의 음악을 "분절과 휴지가 특징인 보통의 서양음악과 달리 끝없이 흐르는 동양적인 미학이 돋보인다"며 "동양의 정신을 유럽 언어로 매우 아름답게 치환해 양단의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음악은 현대음악이라기보다 한국의 음악, 바로 당신들의 음악이죠. 오히려 독일 정서가 담긴 바흐의 음악을 듣는 게 더 어렵지 않나요."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윤이상의 관악기와 현악 5중주를 위한 '거리'(Distanzen)를 지휘하기도 한 홀리거는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휘말렸던 윤이상을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조국의 통일을 염원한 불교 신자"로 기억했다. "지나치게 순진해 사람을 잘 믿었을 뿐인 그의 정치적인 부분이 부각되면서 음악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죠. 왜 정치인의 말을 듣나요, 음악을 들어야죠."
그는 4세 때부터 리코더를 비롯해 피아노,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를 익혔다. 오보에에 집중한 것은 "오보에가 소프라노의 목소리에 가까워 가장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휘자이자 작곡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오보에의 살아 있는 전설' 등의 수식어에는 반감을 보였다.
"나는 음악가예요, 오보에는 내가 편히 걷게 돕는 지팡이일 뿐이고. 오보에 실력만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은 '줄 세우기'에 익숙한 미국적인 사고 방식이죠.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는 지휘자로 무대에 선 적이 없네요."
현악에 비해 한국 관악 분야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그는 "미국적인 교육 방식"에서 답을 찾았다. "솔로로 오보에를 연주하려면 곡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데 오케스트라의 일부로서 자신의 파트 훈련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게 미국의 오보에 교육이거든요."
그는 이번에 연주할 '오보에 협주곡'이 상대적으로 듣기에 어렵지 않은 곡이라고 강조하며 "연주를 통해 한국 청중이 위대한 겨레의 작곡가 윤이상이 종교와 인간애 등 인류의 가장 값진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음을 알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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