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이 들어가는 대형 텐트 안이 온통 캄캄하다. 공포와 호기심으로 멈칫하는 사이, 테크노음악이 귀를 때리자 갑자기 곳곳에서 빛이 공격을 시작했다. 관객들은 순간 무대의 일부가 됐다. 무대와 객석(전석 스탠딩), 관객과 배우의 경계는 사라졌다.
아르헨티나의 넌버벌(무언) 퍼포먼스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ㆍ잔혹한 힘)'는 젊은이들의 클럽을 옮겨 온 듯 활기 찬 무대와 천장에서 내려오는 초대형 수조 등 기상 천외한 장치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내한공연(10월 11일~12월 31일)을 앞둔 이 작품을 5일 중국 베이징 공렌 체육관에서 보았다.
넥타이를 두른 비즈니스맨 차림의 배우가 러닝 머신을 닮은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린다. 그는 줄에 매달린 채 달리고 또 달린다. 총에 맞아도, 비가 쏟아져도, 러닝머신 속도가 빠르건 느리건 달린다. 옆에서 걷는 동료들은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넘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다시 올라와 달리고 걷는다. 지독한 경쟁 사회를 풍자하는 처절한 퍼포먼스다. 무대의 시선은 순식간 암전 후 한바탕 춤판으로 옮겨간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무대를 갈아타는 배우들은 관객과 어우러져 굳건한 사회 구조를 상징하는 종이박스와 스티로폼 벽을 부순다. 남미 안데스풍에서 유럽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의 세례는 파괴의 카타르시스를 더욱 부추긴다.
퍼포먼스의 절정은 가로 세로 각 8m에 달하는 대형 수조가 11m 높이 공연장 천장에서 관객의 머리 위로 내려오면서다. 천상, 혹은 이상 세계를 상징하는 수조 속으로 그리스 신화의 여신을 닮은 배우들이 뛰어들어 유영한다. 이들은 관객과 눈을 마주칠 정도로 가까이 잠수해 피 튀기는 경쟁 사회를 지켜보며 측은한 눈빛을 보낸다.
극의 결말에 이르러 객석과 무대는 다시 흥겨운 나이트클럽으로 돌아온다. 천장에선 관객을 향해 물이 쏟아지고 흠뻑 젖은 배우들이 뛰어내려와 춤을 춘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급작스러운 결말이 당황스럽고 스토리를 쫓아온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한바탕 시끄러운 꿈이라도 꾼 듯 개운하다. 텐트를 열고 나오면 다시 일상이라는 게 안타깝다.
베이징=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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