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국제경제 담당 기자사회·경제·문화·정치 움직이는 거대한 힘으로서 여행에 접근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 유혹적 여행 광고 문구 이면에자본주의의 파멸적 본능 보여 줘
"'웃으세요. 일생의 휴가가 시작됩니다.' 우리 부부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워싱턴 D.C.에서 마이애미로 날아왔다. 카리브해 유람선의 성수기였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처리되지 않은 인간의 분뇨였다. '아,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는 말했다. '유람선이 떠다니는 화장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160쪽, 205쪽)
시쳇말로 하면 이쯤 되겠다. 여행에 대한 '모두까기 인형'의 여행 안내서. 뉴욕타임스에서 국제경제 담당 기자로 오래 일한 저자가 21세기 거대 산업, 여행을 파헤친 책이다. 그가 '안내'하는 여행의 본질은, 소제목만 훑어봐도 알겠지만, 듣고 있기에 무척 불편하다. 지겹고 힘든 일상을 겨우 참아내고, 벼르고 벼른 꿈 같은 며칠의 단꿈 속으로 떠나려는 여행자에게, 이 책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너, 그런 짓을 꼭 해야겠니?'
세상의 고민 따윈 모두 잊어버려도 되는 행위의 영역으로 여기기엔 여행은 이미 너무 큰 글로벌 산업이 됐다. 유엔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2012년 전세계에서 약 10억 명이 국경을 넘어 여행했다. 21세기 첫 10년 동안 세계 여행산업은 52.1% 성장했는데, 이제 그 규모는 에너지나 금융, 농업 같은 산업과 맞먹는다. 2005년엔 전세계의 항공 마일리지를 모두 합치면 미국 달러의 유통액보다 많다는 통계도 있었다. 고용의 측면에서 보면 부피는 더 커진다. 현재 세계 노동인구 10명 가운데 1명은 여행과 관련한 일에 종사한다.
그러니 여행은 더 이상 부수적인 것일 수도, 사회적 책임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없다. 이 책에 담긴 여러 불편한 진실은 그런 각성으로 수렴된다. 저자는 사회, 문화, 경제, 정치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으로서 여행에 접근, 유혹적인 광고 문구 뒤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파멸적 본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예컨대 캄보디아에서 여행은 국내총생산의 20%를 벌어다 주는 산업이다. 여행자들은 앙코르와트의 숨막히는 풍경 앞에 돈을 쓰면서, 그 돈이 크메르루즈의 비극을 지우는 희망의 씨앗이 되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캄보디아에 들어선 호텔 뒤엔 농민의 땅을 수탈한 자본이 있다. 잘 훈련된 외국인들이 관리자 자리를 차지한 그 호텔들은 물품의 70%를 외국에서 수입한다.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건 저임금과 장시간 단순노동이다. 그 배경에 다시 부패한 관리가 있다. 그들은 입장객 제한과 같은 문화재 보호 조치엔 관심이 없어서, 앙코르와트는 나날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때 우리의 롤모델로 칭송되던 두바이의 여행산업, 선진 관광의 형태로 여겨지는 크루즈 관광도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다. 두바이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들은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을 포함한 국제 노동 규약을 거부하는 '중세적 노동 현장'이며, 공해상에 막대한 오염 물질을 뿌리고 다니는 유람선은 최저 임금, 법인세, 지역 문화에 대한 존중이 실종된 '거대한 해상 쇼핑몰'이라는 게 이 책이 드러내는 현실이다.
이 모두까기 저자도 긍정하는 여행은 있다. 지역의 개성을 살린 프랑스의 보르도, 생물 다양성을 관광자원으로 이용한 코스타리카 등의 사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런 여행이 옳다는 당위를 설파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99만 9,000원에 해외에서의 근사한 일주일을 바라는 대다수에게 답이 될 수 있을까. 상품가가 적어도 900만원은 될 듯한 저자의 여행들로 가득 채워진 이 책을 읽고 드는 의문이다. 다른 영역이 모두 그렇듯, 이 바닥에서도 자본주의의 부작용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텐데 말이다.
여행은 한 나라의 소득 수준을 높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 나라 모든 사람들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리셔스 해안의 유럽 여행객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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