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선 여름휴가가 길다. 보통 2주일에서 드물게는 2개월까지 쉬기도 한다. 이 시기에 유럽과 북미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국제바둑축제 '고 콩그레스(Go Congress)'는 이같은 서구인들의 휴가 패턴에 맞춰 대회 기간도 넉넉하고 축제를 즐기는 여유가 배어 있다. 바둑대회라면 하루 이틀간 집중적이면서도 숨 막히는 경쟁을 떠올리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확실히 이색적이다. 또 콩그레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 지역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바둑계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발전 방안도 모색한다.
올해 미주 바둑콩그레스는 서부 도시 시애틀에서 열렸다. 물가가 만만치 않아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할 경우 2천달러가 넘게 드는데도 350명 이상이 참가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북미 바둑계의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감지됐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활력과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앤디 오컨(51) 미국바둑협회 회장이 취임하면서 각급 학교 특활시간에 바둑을 편입시키는데 주력해 그동안 지역 클럽 위주로 소박하게 운영되던 미국 바둑의 외연을 크게 넓혔고, 지난해 첫 입단대회를 열어 앤디 류(22ㆍ뉴욕대 재학), 윌리엄 스(19ㆍ토론토대) 등 두 명의 프로기사를 선발했다. 한ㆍ중ㆍ일ㆍ대만 등 극동지역을 제외하고는 최초의 사례로 세계 바둑 사상 자못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미국 바둑계 변혁의 중심에 한국의 김명완 9단이 있다. 2010년부터 미국에서 바둑보급활동을 펴고 있는 김명완은 미국바둑협회의 프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미주 지역에 프로바둑 시스템을 이식하는 프로젝트를 열성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컨 회장의 왕성한 활동력과 김명완의 꾸준한 노력이 합쳐져 미국이라는 거대한 황무지에 하나 둘 바둑의 싹이 심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 명의 입단자 가운데 윌리엄 스는 지난 5월 한국에 건너와 명인전을 비롯 여러 오픈기전에 출전하는 등 프로바둑의 세계를 직접 몸으로 체험했고, 앤디 류는 이번 미주 바둑콩그레스에 초청기사 자격으로 참가해 강의와 지도기를 실시해 입단 후 크게 달라진 위상을 보였다. 또한 대회 기간 중 열린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에서 미국의 아마 강자 에릭 루이(24)가 월드조에서 우승, 본선에 진출한 꿈같은 사건은 내내 큰 화제가 됐다. 이러한 바둑계 주변 환경 변화들이 북미의 아마강자그룹을 각성시키는 충분한 계기가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낮게 보고 냉소하던 상당수 미주 바둑인들이 새로운 관심과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김명완 9단은 이렇게 의욕을 내비쳤다. "미주 지역 최초의 프로기사가 탄생한 후 현지 바둑계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진다. 미주 바둑인들에게도 '프로'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것이다. 프로에게 바둑을 배우고 싶다거나, 우리 지역에서 바둑을 가르쳐줄 수 없느냐는 문의가 무척 많아졌다. 이같은 분위기 변화에 맞춰 조만간 LA에 바둑센터를 개설, 운영하면서 미주 바둑 보급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다."
김종렬 한국기원 기획홍보국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