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한 부인 그리워하는 주인공 저음의 현악기 '비올라 다 감바'로 인간 목소리의 모든 굴곡 모방음악사의 무명, 장 드 생트 콜롱브에 저자가 입김 불어 넣으면서 예술과 사랑에 대해 질문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극심한 감정의 격랑을 겪었다. 아름다운 것은 왜 본질적으로 슬픈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그것'을 잃는다.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처럼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112쪽)
은 이 근원적 상실 앞에 목놓아 울 수밖에 없는 인간 운명을 환기하기 위해 그 자신 '거의' 음악가인 키냐르가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라는 악기를 끌어들인 1991년도 소설이다. 이듬해 국내 출간됐으나 도서 정가 3,800원을 마지막으로 절판됐던 책을 문학과지성사가 키냐르의 아홉 번째 책으로 새롭게 펴냈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악기로, 바이올린의 우울한 이복형 같은 비올라를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할 수 있도록 변형시킨, 16~18세기 유럽에서 널리 사용됐던 저음의 현악기다.
소설의 첫 문장은 디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주인공 장 드 생트 콜롱브의 가장 거대한 상실로 시작한다.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 부인은 두 살과 여섯 살 난 두 딸아이를 남겼다. 생트 콜롱브 씨는 아내의 죽음이 사무쳤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다." 그는 "3년이 지났는데도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5년이 지났는데도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아내 때문에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악기 연주에만 몰두한다. 비올라 다 감바에 제7현을 덧대 더 깊은 고통의 음역을 찾아낸 이 예술가는 마침내 "인간 목소리의 모든 굴곡을 모방"하는 데에 이르지만, 궁정음악가가 돼 달라는 루이14세의 요청을 멸시하듯 내친다. 오두막에 기거하며 열정적인 고요 속에서 두 딸과 함께 늙어가는 생트 콜롱브에게 마랭 마레라는 젊은 제자가 찾아오면서, 이 얇은 책의 페이지 사이로 예술혼과 세속적 야망, 사랑과 질투, 삶과 죽음의 대립항들이 산화하듯 폭발한다.
변성기로 성가대에서 쫓겨난 갖바치의 아들 마레가 비올라 다 감바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순간, 호기심과 불안감이 뒤섞인 얼굴의 가녀린 아가씨로 자란 생트 콜롱브의 큰 딸 마들렌은 사랑에 빠진다. 생트 콜롱브가 마레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그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그의 '고통'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 앞에서 광대처럼 연주한 마레가 세속적 성공이라는 황홀한 자기 도취에 빠지자, 생트 콜롱브는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를 산산이 부순 후 그를 내쫓아 버린다. 마들렌은 남몰래 아버지를 배신하고 쫓겨난 마레에게 아버지의 모든 음악적 기교와 비법들을 자기 자신과 함께 헌납하지만, 출세한 연인은 이 사랑에 배신으로 응답한다.
생트 콜롱브에게 음악이란 "그저 음악이 간절할 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주하는 것", 그뿐인 것이다. 왕을 위한 것도, 신을 위한 것도, 사랑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홀로 연주할 때면, 소설 속에서는 언제나 열렬히 일부일처제를 신봉하는 키냐르의 인물답게, 생트 콜롱브에게 죽은 아내가 찾아온다. 딸들이 깊이 잠든 밤, 생트 콜롱브가 거의 소리도 나지 않게,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곡 '회한의 무덤'을 연주하며 눈물을 흘릴 때, 그의 아내는 기적처럼 나타나 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연주를 들었다. 그러길 수 차례.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다가도 만일 이것이 광기라면 그녀가 그에게 행복을 선사해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생트 콜롱브는 그 순간을 고대한다.
실제 음악의 역사에서 생트 콜롱브는 왕립관현악단의 독주자였던 마랭 마레의 스승으로만 간단히 언급된다. 키냐르는 대체로 무명이랄 수 있는 이 예술가에게 입김을 불어넣으며,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을 종축으로,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또 다른 물음을 횡축으로 교직한다. 사실 동일한 질문인 이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 키냐르는 생트 콜롱브의 최후를 극적으로 간결하게 진술한다.
악보를 그리지도, 출판하지도 않고 연주하는 이 거장의 죽음이 마레는 두렵다.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 그 음악들을 구하기 위해, 중년의 마레는 3년간 매일 밤 생트 콜롱브의 오두막 곁에 숨어 음악을 엿듣는다. 마침내 딸 마들렌을 자살하게 한 마레가 생트 콜롱브에게 발각됐을 때, 생트 콜롱브는 묻는다.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 마레는 답한다.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
두 음악가는 마주 앉아 밤이 새도록 연주를 하고, 악보를 그린다.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읽는 이의 눈에서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 자신 동명 영화의 각색을 맡기도 했지만, 영화가 하지 못하는 일을 소설은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독자를 격하게 뒤흔드는 걸작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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