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을 쓰는 중장년 여성이라면 방문판매(방판)의 추억이 있다. 화장품 매장이 별로 없던 시절, 유니폼 차림의 여성 판매원들은 큰 가방을 끌고 집집마다 방문하며 화장품을 팔았다. 마사지 관리원이 동행하는 날이면, 동네 주부들은 한 집에 모여 너나 할 것 없이 얼굴마사지를 받기도 했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한 방판은 우리나라 화장품산업의 저변을 넓힌 1등 공신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방판의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스마트폰으로 고객들의 화장품 구입시기와 수량을 관리하며, 관심상품을 추천하고, 피부에 대한 상담뿐 아니라 메이크업에 대한 조언까지 해준다. 최근에는 카카오톡을 통해 주문을 받고 상담을 하기도 한다. 판매원들은 더 이상 '화장품 아줌마'가 아니며, '뷰티 컨설턴트'로 불린다.
하지만 방판 시장도 서서히 저물어가는 분위기다. 화장품 매출은 계속 늘고 있지만 방판 매출은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와 중저가 브랜드숍이 활성화되면서, 가장 오프라인적인 방판은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화장품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방판매출은 2008년까지만 해도 57.1%를 차지하며 판매채널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9년 40.2%, 2010년 30%대에 이어 지난 해에는 23.7%까지 줄었다. 올 상반기에는 22.3%까지 내려앉아, 조만간 20%선도 무너질 전망이다.
올 상반기 방판 매출은 3,26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86억원보다 13.7% 감소했다. 대신 같은 기간 온라인 매출은 30%, 면세점 매출은 16%나 매출이 늘었다.
LG생활건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8년 전체 매출에서 방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32%에 달했으나 지난해 19%로 내려간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10%에 머물고 있다. LG생활건강의 경우 방판매출이 소폭 증가하고 있어, 전통의 방판 강자였던 아모레퍼시픽보다는 다소 나은 편이지만 다른 채널의 약진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방판직원 수도 줄어드는 추세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2008년 이후 3만7,000여명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고, LG생활건강은 지난해 1만3,500여명에서 올해는 1만3,100여명으로 줄었다.
사실 일찌감치 사라졌을 법도 한 방판채널이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나름 변신 때문이었다. 화장품 업체들은 방판을 고가 주력제품의 유통채널로 삼아, 부유층 고객을 공략했다. 실제로 지금도 방판을 통해 주로 판매되는 브랜드는 중저가 품목이 아니라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와 헤라, LG생활건강의 후와 오휘 등 고가제품 들이다. 구매력 강한 고객들이 이용하는 고가제품인 만큼, 화장품업체들로서도 방판은 '돈 되는' 채널이었다.
하지만 소비시장의 변화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주된 고객이었던 30~50대들은 서서히 온라인에 익숙해져 갔고, 품질이 상대적으로 좋으면서도 저렴한 중저가 브랜드숍이 뜨면서 방판의 설 자리는 점점 더 비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품목을 다양화하고 서비스를 강화해 젊은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것 말고는 현재로선 방판 채널 활성화를 위한 뾰족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김혜림 현대증권 연구원은 "예전엔 백화점이 없는 지역에서 고가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판매를 통해 많이 샀지만 지금은 곳곳에 백화점이 들어서고 온라인구매가 확대되면서 방판수요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50년을 버텨낸 방판도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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