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화풍은 시기별로 '청색 시대'와 '장밋빛 시대', 그리고 '입체주의 시대'로 나뉜다. 청색 시대는 피카소가 1901년 파리에 정착해 1904년까지 자유분방한 예술활동을 벌이던 몽마르트르의 보헤미안들과 어울린 시기에 그린 작품들의 색조에서 나온 말이다. 대표작으론 영국의 천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2010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놨을 때 최고 4,000만 파운드(당시 한화 약 680억원)까지 평가됐던 이 꼽힌다.
▲ 은 여인과 탁자와 술잔을 그린 그림이다. 썰렁한 탁자 위에 쓰디 쓴 싸구려 술 압생트가 담긴 초라한 술잔이 놓여 있다. 술잔 앞에 앉은 여인의 어두운 얼굴은 세파에 시달려 거칠고 각이 져 있다. 냉기 때문에 더러운 담요 한 장을 뒤집어 쓰고 눈을 내리 감은 채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화가는 여인과 탁자와 배경화면 전체를 음울한 회청색과 무거운 군청색, 검은 윤곽선으로 처리했다. 이처럼 파리 뒷골목 인생의 빛이 없는 비극과 슬픔, 죽음의 빛깔을 표현한 스산한 청색이 바로 청색 시대의 주조이다.
▲ 피카소와 달리, 동시대의 라이벌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청색은 강렬한 햇살 아래 투명하고 깊은 바닷물을 금방 퍼 올린 듯한 울트라마린블루(군청색)다. 보랏빛이 가미되기도 하는, 그 원시적 색조에는 펄펄 뛰는 생명력과 밝은 영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하다. 더 이상 붓을 들기조차 어려웠던 83세의 마티스가 야수적인 청색의 극단을 구현한 게 울트라마린블루의 색종이를 오려 붙인 다.
▲ 같은 청색으로 그린 그림이라도 색조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세계의 모습은 출구 없는 음울한 비극이 되기도 하고, 희망과 에너지가 맥동치는 생명의 땅이 되기도 한다. 최근 민주당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당의 상징색을 청색으로 바꿨다. '태극청색'으로 명명된 민주당 청색의 색조는 마티스의 울트라마린블루에 가깝다. 신뢰, 희망, 진취성을 상징한다고 민주당은 설명했다. 민주당의 기운찬 '청색 시대'를 기대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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