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 '부부 강간' 피해자로 인정받았던 결혼이주 여성이 '결혼 생활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이유로 비자 연장을 거부 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 따르면 필리핀 여성 A(29)씨는 지난 5월 말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이하 부산사무소)에 체류 연장 허가 신청을 냈지만 두 달 뒤 불합격 판정을 통보 받았다.
A씨는 2006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40대 국내 남성과 결혼했으나 3년 뒤 남편과 법정에서 마주 선 처지가 됐다. 당시 A씨는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했다"며 "생리 기간이라고 성관계를 거부하자, 남편이 가스총과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2009년 1월 부산지법은 남편의 강간죄를 인정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부부 강간으로 첫 유죄가 인정된 판결이었다. 4일 후 남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들의 불행은 증폭됐다. 그 후 A씨는 부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며 기숙사에서 혼자 살아왔다.
이후 지난 7월 30일까지 출국하라는 명령을 받은 A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원센터 직원은 지난달 27일 불허 사유를 확인하기 위해 A씨와 함께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했고 직원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부산사무소의 한 직원은 "결혼 생활 안에는 부부관계도 포함되는데 이 여자는 그러지 않았다. 그 동안 (비자를) 연장한 것은 여자가 혼자 살아서 불쌍해서 그냥 해 준 것이다. 조사해 보니 이 여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빨리 출국했다가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한국에) 들어오든지 일하러 들어와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비자연장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왜곡된 성 인식과 폭언을 통해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센터 측은 A씨의 비자 연장을 위한 행정 소송을 준비 중이다.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혼인이 파탄 난 결혼이주 여성의 비자 연장 여부는 결혼 생활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결정된다"며 "A씨가 강간사건 전 가출 경험이 있는 등 결혼 생활이 정상적이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며, 남편의 강간죄를 물은 법원의 판결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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