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의 기초를 쌓고 신앙 생활의 영적인 체험을 음악에 담았던 바흐는 클래식 음악의 영원한 숙제이자 버팀목이다. 고전ㆍ낭만 음악에 치중했던 국내 음악계에서도 최근 바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중견 음악가는 물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젊은 연주자들이 바흐로 눈을 돌리는 사례도 늘었다.
이번 가을에는 '바흐의 대사'로 불리는 독일 지휘자 헬무트 릴링(80)이 한국 합창단,성악가와 함께하는 바흐의 칸타타 등 바흐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무대가 잇따라 펼쳐진다. 자신이 1965년 창단한 관현악단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를 이끌고 4년 만에 내한한 릴링은 6일과 8일 서울모테트합창단,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조성환, 바리톤 정록기 등과 함께 연주한다.
3일 입국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바흐의 음악은 누구에게나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있다"며 "한국 음악가들과 같이 구현하는 바흐는 어떤 새로운 모습일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바흐의 음악은 제목은 낯설어도 친숙한 곡이 꽤 많습니다. 관현악 모음곡 중 'G선상의 아리아'만 해도 그렇죠.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릴링은 1954년 합창단 '게힝어 칸토라이' 창단 이후 바흐에 헌신해 왔다. 이후 이 합창단의 기악 파트너인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와 국제 바흐 아카데미(1981)를 세우고 바흐의 칸타타 전곡(1970~1984)과 교회음악 전곡(2000)을 녹음했다.
그는 바흐에 매진한 이유에 대해 "모차르트, 베토벤, 20세기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끼친 바흐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 훌륭한 지침서"라며 "존경하는 그의 음악을 전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루터교 계열의 기숙사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대학 진학 전까지 음악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 "신학을 배우면서 영적으로 신앙심이 깊었던 바흐의 생각을 이해하게 됐고 신학과 음악을 함께할 수 있는 일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원전연주(시대연주)가 아닌 현대연주로 바흐를 전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능하다면 바흐가 했던 대로 연주하면 좋겠지만 지금의 관객, 그들이 가진 귀, 공연장이 달라졌다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릴링이 시대연주에 묘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15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바흐솔리스텐서울은 학구적인 음악적 접근을 통해 원전연주를 추구하는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다. 바흐를 중심으로 바로크 시대 전반의 작품을 연주한다. 일본 지휘자 마사키 스즈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료 테라가도, '어깨 위의 첼로' 비올론 첼로 다 스팔라를 복원한 벨기에의 시히스발트 카위컨 등 원전연주 권위자들을 초청해 공연을 열어 왔다. 이번 공연은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는 바로크 오보에 연주자 신용천씨가 같이 꾸민다. 바흐 칸타타 150번 등을 연주한다.
음악사적으로 양 끝에 놓여있는 바흐와 현대음악 작곡가 힌데미트의 매력을 동시에 조명하는 자리도 있다. 12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비올리스트 장중진씨의 연주회다.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수석으로 활동 중인 그가 지난 6월 4회 시리즈로 시작한 '바흐와 힌데미트 프로젝트' 두 번째 무대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독일 음악의 첫 페이지라면 그 후 수많은 작곡가들을 거쳐 힌데미트가 그 마지막 페이지쯤 될 수 있다고 봐 두 사람을 한 공연에서 연주해 보고 싶었다"는 게 프로젝트의 취지다.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 1번 등을 연주한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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