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의 비행기 운항거리는 1만㎞를 훌쩍 넘는다. 기나긴 거리 만큼 뉴스로 접하는 현지 어린이들의 힘든 일상을 돕는 것도 그렇고, 특히 입시 준비로 곁눈질할 틈이 없는 한국의 고3 학생들이 봉사의 손길을 건네는 건 더더욱 쉽지 않을 터. 이런 녹록지 않은 조건을 깬 대견한 고교생들이 있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여고생 4명으로, 시간을 쪼개 검은 대륙 어린이들에게 보낼 동화책을 손수 만들었다.
인천국제고 3학년 박소민, 조유정, 유재연, 이지민양이 주인공들이다. 1학년 때부터 정기적으로 에티오피아 아이들에게 소액 후원을 해온 기숙사 룸메이트들인데, 올해 초 다시 머리를 맞댔다.
"형식적인 소액 후원보다는 직접 참여하는 봉사는 없을까?", "그래,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동화책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이렇게 의기투합해 결성된 자원봉사팀이 '508호의 기적'이다. 함께 쓰는 기숙사 방 호수에 착안해 팀 이름을 지었다. .
매일 일과를 마친 자정부터 기숙사 소등시간인 새벽1시까지 508호에서 편집회의가 열리길 7개월여. 드디어 동화책 가 완성됐다. 현지어인 암하릭어 번역은 박양이 펜팔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인 페카투가 도움을 줬고, 일러스트레이터 조소현씨가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소셜 펀딩으로 동화책 300부 발송에 필요한 200만원도 모았다.
한국어와 영어, 암하릭어로 구성된 동화 내용은 속이 꽉 차있다. '아기 사자 테스파예가 축구를 하다 발을 다쳤다. 발이 감염돼 코끼리발처럼 변하는 상피병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기린 의사에게 받은 운동화를 신고 다시 동물 친구들과 신나게 축구를 한다.' 에티오피아에 상피병 환자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신발 신기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겼다.
동화책 제작으로 봉사가 끝나는 건 아니다. 상피병의 근본 원인이 신발조차 사 신을 수 없는 열악한 경제 상황 탓이라는 걸 학생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한 운동화 제조업체들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학생들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읽은 이 회사 대표로부터 후원 의사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여고생 4인방'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정말 기쁘다"며 "내년에 대학생이 되면 공부 때문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서 '508호의 기적'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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