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국가 행사에서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고려대장경을 독경했다는 사실이 일본 학자에 의해 드러났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조직위가 3일 개최한 학술 심포지엄 '인류 문명의 완벽한 보고, 고려대장경'에서는 대장경의 우수성을 서양에 최초로 소개한 루이스 랭카스터 버클리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4명의 석학이 대장경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 불교대학 강사인 바바 히사유키는 "14~16세기 일본의 수도 교토를 통치했던 아시카가 막부는 고려대장경을 돌려 읽으며 일본의 안녕을 기도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조선 에 대장경을 보내달라고 자주 요청한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국가 행사에서 대장경을 독경했다는 것은 처음 밝혀진 사실이다. 일본이 조선에 대장경을 요청한 횟수는 무려 65회.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이 일본의 요청에 응해 45질의 대장경을 보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일본이 이처럼 대장경에 집착한 이유에 대해 히사유키는 "텍스트의 우수성이라는 학문적 측면과 공덕을 쌓는다는 신앙적 측면, 둘 다 있다"고 분석했다.
대장경의 영문 표기가 그 위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장경의 영어 명칭은 산스크리트어와 라틴어를 혼합한 '트리피타카 코리아나(Tripitaka Koreana)'다. 트리피타카는 '삼장(三藏)'즉 3개의 바구니를 뜻하는데, 인도 불교 경전인 경장(經藏)·율장(律藏)·논장(論藏)을 잎사귀에 새겨 3개의 광주리에 따로 보관한 데서 유래했다. 한국 불교 전문가로 불리는 로버트 버스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대장경에는 인도 삼장에 포함되지 않은 다양한 문헌 형식이 들어 있다"며 "대장경의 내용을 삼장의 범주에 국한시키는 것은 대장경에 해를 가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장이란 명칭 대신 'Korean Buddhist Canon'(한국 불교 경전 모음)'이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고려대장경을 고유명사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스웰 교수는 또 대장경 제작 총책임자인 수기(守其)대사에 대해 "에라스무스보다 200년 앞선 탁월한 문헌학자"라고 평했다. 수기 대사는 전국에 분사대장도감을 배치하고 판각을 맡을 필생과 각수를 모집하는 등 대장경 판각을 총괄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생애에 대해서는 태어난 연도도 알려져 있지 않을 만큼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버스웰 교수는 수기 대사가 남긴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을 근거로 "전 세계 지성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수기 대사가 이끈 교감단이 수천 개 경전의 판본들을 수집ㆍ교감한 전 과정과 대장경 편집에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 세세히 기록한 것이다. 버스웰 교수는 "서양 문헌비평가들이 성서 교정판을 출간하면서 범했던 오류를 수기 대사는 그보다 수 백년 전에 융통성과 직관을 발휘해 피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사전 행사로 마련됐다. 본 행사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경남 합천 해인사 일대에서 열린다. 이 기간 동안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해인사의 16개 암자 중 용탑선원, 홍제암, 원당암, 지족암, 희랑대, 백련암 등 6곳이 일반에 공개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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