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사태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역할이 오바마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24일 백악관에서 격론 끝에 대통령이 군사 옵션을 결심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대화론자로 통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케리 장관은 대통령의 결단을 충실히 이행하는 역할자로 물러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 케리 장관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고 성명을 발표한 것만 3차례. 그때마다 오락가락하는 대통령의 입장을 굳이 변호하고 나섰다.
먼저 지난달 26일 케리 장관은 국무부 브리핑 룸에서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 미국 고위인사로서 군사옵션을 처음 공개했다. 나흘 뒤인 30일 케리 장관은 영국과 아랍연맹이 군사공격에서 발을 빼고 반대 여론도 높아지자 "미국은 자체 시간표에 따라 시리아 결정을 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 미국의 독자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날 아침 백악관서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입 역할을 하는 케리 장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 데로 향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7시 집무실에 참모들을 모아놓고 의회 동의를 받겠다는 수정된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이 곧 군사공격 명령을 내릴 것으로 예상했던 케리 장관은 이날 회의 때 대통령의 입장 수정에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달 1일 케리 장관은 다시 국무부 7층 트리티룸에서 5개 방송사와 겹치기로 인터뷰하며 대통령의 입이 됐다. 이틀 전 군사공격을 윤리 문제까지 끌어들여 정당화했던 그 자리에서 이날은 군사옵션의 연기가 미국에게 더 나은 선택이며, 이 같은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은 용기 있는 행위라고 치켜세운 것이다. 물론 케리 장관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케리 장관의 모습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팀 플레이어(공동 조력자)'라고 평가했으나,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그가 점차 자신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오바마 정부는 일요일인 이날부터 시리아 군사공격 동의를 위한 의회 설득에 전방위로 나섰다. 의회에서 의원 80명이 모인 가운데 비밀 정보 브리핑이 진행됐고, 2일에는 백악관에서 상하 양원의 6개 안보 관련 상임위 소속 위원장 및 간사 12명과 오바마 대통령의 토론이 열린다. 미군은 세계최대 핵 추진 항공모함인 니미츠호를 인도양에서 홍해로 이동시켜 군사공격 준비를 강화했다.
한편,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2일 월례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달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확신하고, 시리아 정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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