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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문ㆍ이과 통합 공론화하자] <2>교육과정은 통합, 교실은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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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문ㆍ이과 통합 공론화하자] <2>교육과정은 통합, 교실은 분리

입력
2013.09.0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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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가람고에는 '연극의 이해'라는 수업이 있다. 문학으로서 희곡과 예체능으로서 연극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수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인문계열 혹은 예체능계열 학생만을 위한 수업은 아니다.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3학년 배현지(18)양은 2학년 1학기 때 이 수업을 들었다. 뿐만이 아니다. 이과 학생이라면 수능 준비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동아시아사, 세계사까지 두루 배웠다. 다른 학교의 분류대로라면 이과반이라 듣기 어려운 과목들이다. 배양은 "역사나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의학적인 지식은 대학에 가서 쌓으면 되지만 인문ㆍ사회적인 소양은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해 듣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상경계 진학을 준비하면서도 '이과수학'으로 분류되는 미적분Ⅱ나 기하와 벡터 수업을 받거나, 인문계 지망이면서도 고2 때 화학Ⅱ를 듣고 흥미가 생겨 자연계열 과목을 대폭 늘려 듣는 학생도 있다.

이는 한가람고가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미리 선택한 과목을 가르치는 교실을 찾아 수업을 듣는다. 그렇다 보니 흔히 일반고에 있는 문과반, 이과반이 없다. 대신 학생 각자 짠 시간표가 있을 뿐이다. 이준희 교감은 "학생들의 수업 조합을 세어보면 2학년은 137개, 3학년은 118개 정도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 문∙이과 융합안이 시행되려면 한가람고처럼 문과 이과 구분 없이 학생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여전히 문ㆍ이과 칸막이가 굳건하다. 민족사관고 한가람고 등 극소수 자율형사립고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교는 2학년부터 문과반, 이과반으로 나눠 별개의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한다. 학생들은 수학을 잘하면 이과, 못하면 문과를 택하기 십상이다. 2002년부터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은 이미 문ㆍ이과 구분을 없앴고, 이명박 정부부터 교과교실제를 도입했지만 현실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과 달리 문∙이과반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모든 과목의 담당 교사, 지정 교실을 따로 준비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진훈 고대부고 교사는 "교사들이 교실에 상주하면서 수업을 하려면 당장 교사와 교실 수가 대폭 늘어나야 하는데 현실은 문ㆍ이과 교과별로 정해진 교사 수에 맞게 학생들 수를 조율하기에도 벅차다"고 말했다. 학교 입장에선 주 1, 2시간 개설될 과목을 위해 해당 전공의 교사를 한 명 더 두느니 일률적으로 과목을 제한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정부 지원도 도입 초기에 비해 뚝 떨어졌다. 교과교실제 시범학교에 근무했던 한 교사는 "도입 초기에는 한 학교당 15억원씩 투입됐던 것이 지난해에는 1억원 정도로 줄었다"며 "교과교실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학교는 자율성이나 예산이 충분한 자율형공립고나 신설학교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교과교실제를 시행하는 학교들도 대부분 국ㆍ영ㆍ수 중심의 '수준별 이동수업'으로 활용하는 수준에 그친다. 교육부의 '교과교실제 도입 현황'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지난 해까지 교과교실제를 도입한 전국의 중ㆍ고교는 2,323곳이지만 일부 과목에 한해 시행하는 '과목중점형'이 80.2%(1,864곳)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교과목에 교과교실제를 적용하는 '선진형'을 시행 중인 학교는 459곳뿐이다.

수능 융합안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고교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문ㆍ이과 통합 교육은 여전히 허공에 뜬 일이 된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은 "교육과정과 입시제도가 따로 놀아서는 정책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며 "교육과정 연구ㆍ개발, 교과서 마련, 교사 연수ㆍ확보, 입시가 한 데 연동돼 체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융합교육의 개념이나 수업 모델이 부족한 것도 교육현장에서의 접목을 더디게 한다.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STEAM(과학ㆍ기술ㆍ공학ㆍ예술ㆍ수학)형 융합인재교육은 수학ㆍ과학 중심의 융합교육으로 범위가 좁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차별화된 융합형 교육과정 및 교사 전문성 신장 모델 개발' 연구를 진행중인 이미순 대구대 교수는 "특정 교과 중심인 STEAM을 넘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며 "수직적으로는 낮은 학년부터 높은 학년까지, 수평적으로는 한 교과와 다른 교과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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