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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3일] 다시 있어서는 안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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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3일] 다시 있어서는 안될

입력
2013.09.0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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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치세력의 전쟁놀이가 우리를 몸서리치게 한다. 한국일보에 보도된 녹취록은 아무리 선입견을 배제하고 읽어보려 해도 현대 민주정치 하에서 포용하기 어려운 무력사용에 의한 혁명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물론 재판과정에서 자료의 신뢰성은 다시 검증되어야 하겠지만.

'전쟁'을 운운하는 그 세력은 과연 전쟁이 뭔지 알기나 하는걸까. 그 무서움을. 그 잔혹함을.

2010년에 개봉된 영화 '포화속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동성중에 다녔던 이우근이라는 학생은 남쪽으로 피난에 피난을 거듭하다 대구에 이르러 학도병 자원입대를 결심한다. 입대후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서 포항여중에 다른 70명의 학도병과 머물던 중, 북한군의 기습에 반격하다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런데 그의 시신을 수습하던 중 그가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와 일기가 발견되면서, 한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동족상잔의 고통, 죽음에의 두려움, 가족과 생에 대한 애착을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전쟁을 경험해보았기에 우리 민족은 안다. 무력에 의해 한쪽의 의사를 다른 쪽에 강요하는 것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걸. 민주적 과정에 의한 민주주의야 말로 수많은 선조들이 피를 흘리며 우리에게 넘겨준 이 산하와 아름다운 문화의 요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지키는 것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는 젊은이의 피를 부르지 않는 전쟁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알기에 그토록 비폭력과 민주주의에 의존하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다 차가운 바다와 땅에서 마지막 호흡을 멈추고 떠나가는 젊은이들. 현실에서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우연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런, 그리고 가장 피비린내 나는 행위가 곧 전쟁이요, 수 대(代)에 걸친 나라빚을 일으켜 대대손손 경제적으로 고통받게 하는 것이 또 전쟁이요,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마음에 심어 끝없는 증오의 사슬에 사람들을 눈멀게 하는 것이 또 전쟁이다. 그리고 적어도 한국전쟁을 겪은 한반도의 사람들은 바로 그런 모순덩어리를 아직도 몸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문제가된 정치세력이 뜬금없이 전쟁과 총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그들이 정말 비폭력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역사와 국가에 얼마나 진지한지 묻고싶다. 수많은 전쟁과 외침속에 아까운 생명이 꺼져간 역사를 꼭 떠올려보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진정 평화와 진보를 원한다면,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얘기하는 요한 갈퉁의 글도 읽어보았으면 한다.

극단주의의 특징은 목적이 무조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수백만을 살상한 나치즘과 수백만을 굶겨죽인 북측의 독재정권 모두 그런 극단주의의 실행이었다. 우리 사회에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름으로 폭력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폭력의지는 법과 질서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맞다.

극단주의의 토양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언론이다. 1898년 아바나 항에 정박중이던 메인 호가 원인미상의 폭발을 일으켜 266명의 미 해군이 사망하였을 때, 전쟁을 부채질하는 호전적인 보도를 일삼던 언론 덕분에 미국은 여론에 밀려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다. 당시 사회분위기에 이성은 자리를 잃어갔고, 결국 전쟁은 발발하고 말았다.

여기서 최근 두가지 이슈를 심도있게 보도해주는 한국일보의 역할을 잠시 언급하고 싶다. 한국일보는 이번 'RO'회합의 녹취록 전문을 단독 게재함으로써 우리에게 극단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국가기관의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 혐의에 관한 보도도 독자의 궁금증을 적잖이 가시게 할만큼 충분히 깊이가 있었던 것 같다. 만약 한국일보가 한쪽 이념에 경도된 이념지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의 보도는 균형보도와 심층보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고 보기에 큰 무리가 없다.

김장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융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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