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같은 거리 시위에서 정치의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후 도쿄 곳곳에서 벌어진 반원전 운동은 일본 사회에 새로운 시위 문화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4월 도쿄 변두리 고엔지의 작은 상점가에서 시작된 축제 같은 시위가 시부야, 신주쿠 등 도심으로 퍼져 나갔고, 매번 약 2만명이 참가했다. 이 흐름을 이어받아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와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 유명인들이 9월 주최한 시위에는 6만명이 몰려 들었다. 일본 사회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회복했다"는 진단을 내리기 바빴다.
당시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한 학자가 모리 요시타카 도쿄예술대 교수다. 그는 2009년 출간한 을 통해 풀뿌리식으로 태동하고 유희와 결합한 시위 움직임을 분석, 새 정치의 도래를 일찌감치 주목한 '거리의 사상가'다. 이 책은 국내에는 올해 초 번역 출간돼 촛불집회와 무단 점거 운동 등 한국에서도 발견되는 새로운 형태의 시위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인문학 공부 모임 수유너머N 초청으로 방한해 지난달 29,30일 서울 연희동 생명문화연구소에서 강의를 한 모리 교수는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거리 시위의 상상력으로 낡아 버린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리 교수는 이들 시위의 기원으로 1992년 일본 거품경제 붕괴 이후 불안정해진 노동시장을 지목한다. 90년대 초중반 학교를 졸업하고 정규직 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도록 내몰린 '프리터족 1세대'가 현재 40세 전후가 돼 새로운 시위를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리 교수는 "이들이 10대였을 때 향유한 80년대 문화가 최근 시위에서 많이 인용된다"며 "시위 현장에 음향 장비를 실은 트럭인 사운드카가 등장하는 것도 당시 펑크·레이브 문화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60년대 후반 전공투로 대표되는 격렬한 사회변혁운동 이후 거품경제의 파고 속에서 형성된 80년대 대중문화가 오늘날 시위에서 주축을 담당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정치적이기보다는 소비주의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제 같은 시위에서 문화는 단순히 수단이 아니다. 모리 교수는 "이들 시위에서는 오히려 정치가 문화를 방어하는 수단"이라며 "분노뿐 아니라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드는 즐거움이 시위의 정신인 것도 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지식인 사회의 실패도 거리의 정치가 활성화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리 교수는 "90년대 이후 대학은 시장화돼 대항의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고이즈미 정권 이후 일본 정치는 스펙터클화돼 무력해졌다"고 비판했다.
반원전 운동의 시발점이 된 고엔지는 20~30대 프리터족이 많이 살고 있어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다. 재활용품 가게인 '아마추어의 반란'은 이들이 교류하며 일을 꾀하는 거점이다. '집세를 공짜로 해라', '크리스마스 타도' 등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슬로건을 내건 시위, 참가자들이 각자 음식을 지참한 채 일시적으로 거리를 점거하는 잔치도 기획됐다. 모리 교수는 "재활용품 가게 운영 자체가 양극화하는 사회에서 대안적 생산과 소비를 모색하는 프리터족의 생존 방식을 보여준다"며 "이런 일상적 정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리 교수는 "거리에서 새로운 정치와 삶의 방식의 실험이 일어나고 있다"며 "한국의 촛불집회와 무단 점거 운동의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2일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하는 국제 골목 컨퍼런스 '골목 돌아오다'에도 참석해 고엔지의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이 컨퍼런스는 골목을 중심으로 조성되는 공동체 문화 등 각국의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 사례를 발표하는 자리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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