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궁근종(자궁 근육의 양성 종양) 제거 시술을 받은 최모(49)씨는 치료 후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다가 폐로 가는 혈관이 막혀(폐색전증) 숨졌다. 가족들은 의료사고를 의심했지만 병원과 대화조차 쉽지 않았다. 돈과 시간 때문에 소송도 언감생심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달려간 곳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었다. 최씨 가족들은 중재원의 도움으로 사망 경위를 알게 됐고 합의금으로 1,800만원을 받았다.
2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지난해 출범 이후 중재원의 도움으로 합의에 이른 의료분쟁이 올 7월까지 모두 270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조정 대상 분쟁 중 합의성공률(조정결정성립률)은 86.26%. 연 1만 건에 달하는 국내 의료분쟁 건수를 감안하면 중재원의 역할이 아직 미미하지만 쌍방이 동의해 조정 절차를 진행했을 경우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
중재원에 따르면 의료분쟁 조정 신청이 가장 많은 진료과는 정형외과로 전체 1,239건 중 235건(18.97%)에 달했다. 이어 내과, 치과, 외과, 신경외과 순이었다. 정형외과와 내과에서 분쟁 신청이 많은 것은 진료 분야가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고 환자 수가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의료행위가 증가하는 추세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정 과정이 정상으로 진행됐을 경우 100% 합의된 진료과는 산부인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비뇨기과,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등이었다. 특히 피해자와 의료기관이 감정적으로 맞서는 일이 잦은 산부인과에서도 제대로 조정이 이뤄지면 합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합의성공률이 60%로 가장 낮은 곳은 성형외과. 치료 결과에 대한 만족도 등 환자의 주관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분쟁은 소송을 하면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평균 26개월이 걸리는 데다 변호사 선임 등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중재원에 신청할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수수료)으로 90일 안에 합의 여부가 결정된다. 수수료는 신청인이 신청한 합의금 액수가 500만원 이하인 경우 2만2,000원, 5,000만원은 11만2,000원, 1억원은 16만2,000원 등이다. 피신청인이 조정에 불응해 신청이 각하되면 수수료 전액을 돌려받고, 신청인이나 피신청인 어느 한 쪽이 신청을 취하하면 절반이 환급된다.
환자나 의료인이 조정을 신청하고 피신청인이 이에 응하면 중재원에 상근하는 의료인, 법조인과 외부 자문위원들이 조정 절차를 시작한다. 신청인과 피신청인에게 서로의 상황을 설명하고 양측이 만족하는 합의 조건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합의안을 중재원이 제안해 양측이 받아들이면 조정결정이 성립된다.
중재원 관계자는 "전체 신청 건수의 약 60%가 의료기관이 동의하지 않아 진행되지 못했다"며 "조정이 성립되면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만 조정에 반드시 응해야 하거나 중재원이 제시한 합의안을 따르게 할 강제력은 없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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