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개원 이래 최대 공안 수사', '현직 의원이 주도한 내란음모' 등 여러 수식어를 동원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지하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ㆍRO)의 5월 12일 회합 녹취록 내용을 토대로 볼 때 법 적용이 잘못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검찰과 국정원 간 불협화음도 감지되는 등 여러 의문과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내란음모' 카드 왜?
가장 큰 의문은 국정원이 왜 30년 넘게 쓰지 않았던 '내란음모' 카드를 꺼내들었느냐는 것이다. 내란음모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국헌문란'의 목적이 전제돼야 한다. 국헌문란이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하는 것을 말한다. 녹취록에서 참석자들이 언급한 통신시설이나 유류고 등은 국가기간시설이기는 하나, 이 시설들에 대한 공격 또는 점거를 논의한 것을 바로 '국가기관 전복'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이들이 국가기관 전복을 모의했다는 보다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설사 기소가 되더라도 법정에서 내란음모죄를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에 적용 가능한 '외환(外患)죄상 일반이적(利敵)' 조항이 있다는 점도 혐의 적용을 둘러싼 의문을 키우고 있다. 형법 99조 일반이적 조항은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에 대해 무기 또는 징역 3년 이상의 형을 선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녹취록 발언처럼 이 의원 등이 무기를 준비하려 했거나 기타 사회시설 장악을 통해 북한을 도울 의도가 있었다면, 이 조항 적용이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형법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내란음모'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이 '일반이적'보다 훨씬 더 큰 데다, 일단 큰 그림으로 수사에 들어간 뒤 물증이 나오지 않더라도 (기소 전이라) 혐의 변경이 가능한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만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는 적용이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RO를 새로운 정부를 칭하며 변란을 일으키려는 '반국가단체'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검찰과 공조에 문제 있다?
통상 공안사건에서 검찰과 국정원은 대부분 자료를 공유하고 향후 일정에 대해 조율을 마친 뒤 공개수사에 착수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수사 초기부터 두 기관의 잡음이 심상치 않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언이다.
국정원이 3년여의 내사를 통해 기초조사를 마쳤다면 검찰도 어느 정도 사건 파악이 됐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은 압수수색이 진행된 지난달 28일 밤 늦게 부랴부랴 타 지청에서 인원을 지원 받아 수사팀을 만들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과정부터 이렇게 공개적으로 수사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검찰이 법정에서 내란음모 공소유지를 담당해야 하는데 국정원에 끌려가는 형국이다 보니 법리검토 등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진보당 간부들의 구속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구속된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공개한 내란음모 증거자료는 녹취록 발언과 참고인 진술서가 유일했다"며 "당시 모임의 녹취록도 구체성이 없고 구속자들 의견에 반대하는 참석자의 발언도 나와 단순히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그동안 "녹취록 외에도 결정적인 단서를 다수 확보했다"고 밝혀온 것과 배치된다.
재경지검의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로 불만을 품은) 국정원이 이번 기회에 검찰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속내와 상관없이 두 기관의 잡음이 사건 진실 규명에 큰 차질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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