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보고 있는 이른바 지하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ㆍRO)의 5월 회합 내용이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녹취록을 통해 공개되면서 정보원이 녹취록을 확보한 경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녹취록을 보면 이 의원을 포함한 회합 참석자들의 발언은 음성 파일인 'MP3' 또는 음성ㆍ영상 파일인 'MP4'로 구분돼 발언 시간까지 표시돼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강연 및 토론 내용은 물론 박수와 웃음소리, 개인적인 잡담도 포함됐다. 특히 MP4 파일 구분은 국정원이 음성파일뿐 아니라 동영상 자료까지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의미한다.
국정원 측에서 회합이 이뤄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종교시설에 미리 녹음장치를 설치했을 수도 있지만, 모임 1시간 전에 급하게 대관이 이뤄진 점에 비춰 볼 때 그럴 가능성이 낮다. 결국 회합 참석자 중 누군가가 현장에서 녹음을 해 국정원에 넘겨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녹취록에는 제보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제법 길게 등장한다.
문제는 제보자의 성격이다. RO 활동에 회의를 느낀 조직원이 자발적으로 국정원 수사에 협조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법원에 제출된 녹취록은 합법적인 증거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제보자가 국정원에서 증거 수집을 위해 오래 전부터 RO에 심어놓은 정보원일 수도 있다.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3년 전부터 내사했다고 강조한 대목도 정보원의 존재 가능성을 높여준다. 정보원 활용 자체가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논란을 피하기는 어렵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의원 등 수사 대상자들이 '프락치' 의혹을 제기하며 증거 수집 과정에서의 불법성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정원 측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녹음 과정의 적법성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제보자가 자신이 포함된 대화 내용을 녹음해 수사기관에 제보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만 타인의 대화를 몰래 녹음해 제보했을 경우 불법도청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본보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제보자는 당시 회합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며 주요 참석자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눈 흔적도 있어 불법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물론 국정원이 제보에만 의존해 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메일과 통신 감청 등 법적으로 보장된 수사기법을 총동원해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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