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서울 가리봉동의 중국동포 타운. 붉은색으로 적힌 한자 간판이 두 집 건너 하나일 정도로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거리에 '신문'이라고 적힌, 유독 눈에 띄는 한글 간판이 하나 있다. 이 건물 2층 260㎡(약 80평)의 공간에 차려진 편집국에는 기자들의 타자 소리가 요란했다. "마감이 코 앞이라 좀 바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옌벤 억양이 말투에 진하게 밴 김정룡(52)씨가 건넨 명함엔 '중국동포타운신문 주필'이라 적혀 있었다.
매달 1, 16일 격주로 정기 발행되는 중국동포타운신문은 말 그대로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을 위한 기사를 다룬다. 국내에서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 중 가장 많은 지면(32면)에는 정치 사회 문화는 물론 역사기행 코너까지 알찬 내용이 가득하다. 발행부수도 2만~7만부로 동종 신문 가운데 1위이니 중국동포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리봉동을 중심으로 건대입구, 동대문 등 서울 주요 중국동포 밀집지역과 중국식품점, 관공서 등에 무료로 깔리는 데 배포 당일 동이 난다. 김씨는 "경기 안산이나 수원 등 다른 중국동포 밀집지역에서도 받아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며 '완판 신문'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인기 비결은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재외동포 방문취업제 문제를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이다. 이 제도는 재외동포의 합법적인 국내 취업을 돕고자 2007년 도입됐지만 체류기간이 4년10개월로 제한돼 동포들의 원성이 높았다. 신문은 한국에 더 오래 거주하고 싶어하는 동포들의 바람을 수렴, 체류기간을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동포들을 상대로 한 좌담회를 활발하게 열고 현지 의견을 듣기 위해 옌벤을 방문해 수 차례 심도 있는 기획기사를 쏟아낸 결과물이었다.
김씨는 "법 개정까지 4년이나 걸렸지만 신문이 강한 목소리를 내 준 덕분에 그나마 개정을 앞당길 수 있었다는 동포들의 말을 듣고는 눈물이 다 났다"며 웃었다. 독자 이훤(55)씨는 "먹고 살기 바빠 불합리한 정책이나 대우에 목소리를 내기 힘든 게 우리 동포들인데, 이런 큰 신문이 우리 편을 들어줘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10년 전 창간할 때만 해도 한 장짜리 전단지에 불과했던 중국동포타운신문이 인기 있는 종합신문으로 성장한 것은 김씨의 노력 때문이다. 중국 옌벤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한국을 동경했던 김씨는 1999년 무작정 한국에 들어와 한국의 역사와 언어 공부에 빠졌다. '한국 통'이 된 그는 2003년 창간 당시 칼럼 기고를 시작으로 지면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글을 눈 여겨본 창간 사주 김용필씨가 2006년 그에게 신문사를 넘겼고, 이후 7년 넘게 김씨는 1면 기사는 물론 칼럼과 사설, 전면의 편집까지 도맡아 신문을 키웠다.
아직 광고 수입만으로는 신문제작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김씨를 포함한 기자 5명이 수익사업을 위해 만든 컴퓨터 교육장과 여행사 업무를 병행할 정도로 빠듯한 살림이지만 그가 신문을 더 잘 만들어야 할 이유는 뚜렷했다. "조선족들의 실질적인 고충엔 관심 없고 '조선족끼리 폭행' '살인' 같은 자극적인 기사만 부각되는 한국 언론 현실에서 우리 신문이 중국동포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니까요."
글ㆍ사진=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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