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0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이 전 의원을 둘러싼 법리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검찰과 국정원은 지난 5월의 지하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ㆍRO) 회합 녹취록 등을 들어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내란음모 혐의 적용은 무리하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내란음모 혐의는 내란의 목적이 분명하고, 내란을 위한 실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했을 때 적용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물론 내란을 실제로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계획이 실행에 옮겨질 위험성이 있을 때나 가능한 법 적용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 의원이 주도한 RO 모임이 이 같은 적용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있다. '내란을 목적으로 모임이 만들어졌고, 지속적으로 모여 내란을 위한 수단과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해 왔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지난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에서 열린 회합의 녹취록이다.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모임에서 주요 참석자들은 유사시 무기 확보나 기간시설 타격, 기간시설 종사자 포섭 등의 방법을 논의했다. 이 의원 등이 조직원 결속 또는 자기 과시를 위해 '한 번 해보자'는 수준을 넘어 실제 내란을 목적으로 실행 계획을 모의했다는 게 공안당국의 주장이다.
국정원 등은 대법원 판례 역시 "일반적인 합의의 수준이 있으면 족하지 내란죄 착수 전에 실행의 계획까지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의할 필요가 없다"고 내란음모죄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판례에 따르면 녹취록에 등장한 발언들이 내란음모 혐의를 뒷받침하기에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란음모 혐의 적용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먼저 "전쟁을 준비하자"거나 "통신과 철도, 가스유류 같은 것을 차단시켜야 한다"는 등 과격한 말들이 많기는 했지만 이를 곧장 내란의 실행 계획 모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다.
구성원들이 단순한 논의를 넘어 어떻게 총기를 확보하고 기간시설을 타격할 것인지 등을 담은 문서나 RO가 내란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라고 볼 만한 조직 강령 같은 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란을 실행하려고 계획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장난감 총을 개조한다'거나 '인터넷에서 나오는 무기 만드는 기초' 등을 언급한 이들의 대화 수준을 볼 때 내란을 일으킬 능력이 있는지조차 회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형태 변호사는 "총도 구하기 힘든 나라에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 100여명이 모여 내란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코미디 같은 얘기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대화를 옮겨 적은 녹취록만으로는 그 말에 얼마나 무게가 실려 있는지 등 발언의 진의를 알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녹취록에 공개된 말들이 '진담'이었는지 '농담'이었는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한 고등법원 부장 판사는 이에 대해 "이들 모임에 등장한 사람들이 어떤 뉘앙스로 얘기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말을 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할 문제"라며 "재판에 제출될 녹음 파일을 직접 들어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모임에서 '총기'나 '통신 유류시설 타격' 등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이 의원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도 논란거리다. 국정원은 참석자들이 이 의원을 '대표님'으로 칭하는 등 그가 사실상 모임을 주도했고, 큰 틀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에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반면 국정원이 유무죄에 대한 결론보다는 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내란죄를 언급함으로써 국정원 개혁 요구 등 여론을 바꿔 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이 여전하다. 결국 국정원이 녹취록을 바탕으로 내란음모 혐의를 더 촘촘하게 뒷받침할 탄탄한 증거를 얼마나 더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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