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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사이 머물며 바라보는 세상의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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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사이 머물며 바라보는 세상의 절망과 희망

입력
2013.08.3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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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의 가장 큰 축복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부조리, 그 자체다. 어느 국면에 시선을 들이대도 중국이라는 현실은 언제나 소설적이어서, 작가는 도처에서 인간성의 극단을 체험할 수 있다.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언제나 발생하는 이 중국이라는 대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인문적 주제가 오늘날 가장 잘 탐구될 수 있는 곳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가 '현대판 발자크'로 옹립한 중국 소설가 위화가 신작소설 을 내놨다. 중국이라는 '인간희극'의 장을 이승에 한정하지 않고 무한의 저승으로까지 확대한, 담담하면서도 곡진한 진혼곡이다. 주인공 양페이가 자신의 죽음을 깨닫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머무는 7일간의 기록인 이 소설은 작중 인물들이 농담을 하고 있을 때조차 비애의 물기로 촉촉해서,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세계가 슬픔의 땅 위에 건설되었다는 진실과 대면하는 일이 된다.

마흔 한 살의 양페이는 불현듯 죽었다. 사후 첫 날, 혼령이 된 그는 셋집 현관문 앞에 A3이라고 쓰인 번호표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화장장에서 발부한 화장 순서를 알리는 통지서다. 식당에서 국수를 먹다가 화재로 인한 건물 폭발로 목숨을 잃은 양페이에겐 아무도 그의 죽음을 추모해줄 이가 없다. 유일한 가족인 양아버지는 불치병 진단을 받자 아들에게 누가 될까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미모와 지략을 겸비한 아내 리칭과의 결혼은 "그 자체가 한바탕 오해에 불과했다." 부와 성공을 찾아 양페이를 떠난 리칭은 결국 자살하고, 양페이는 '한 여류 사업가의 자살' 기사가 실린 신문을 읽다가 화재가 난 건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스스로 염하고 수의 비슷한 옷으로 갈아입은 양페이는 역시 스스로 만든 상장을 팔에 차고 화장되기 직전까지의 시간 동안 "삶과 죽음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그 어슬렁거림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군상들은 그 자체로 중국 현실의 소설적 압축이다. 딸이 학교 간 사이 세상 모르고 자다가 건물이 통째로 강제 철거되면서 땅 속에 묻혀버린 공장 야간 노동자 부부. 우울증을 앓는 아내가 실종된 후 살해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으나, 6개월 후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허망하게 무죄가 입증된 어느 남편. 스물 일곱 구의 영아시체를 의료쓰레기로 처리해 강물에 던져버린 대형병원과 이 사건을 끈질기게 언론에 제보한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어머니 같은 옆집 아주머니.

아이폰4를 사고 싶어 매춘을 하겠다는 젊은 연인을 후려치고 벽에 머리를 박으며 곡을 하던 가난뱅이 청년은 결국 짝퉁 아이폰을 연인에게 선물하고, 사랑마저 가짜라는 모욕감에 연인은 고층건물 꼭대기에서 자살소동을 벌이다 실족사한다. 묘지가 없으면 저승에도 갈 수 없는 불평등은 이 혼령들의 세계도 지배한다. 청년은 연인의 묘지라도 마련하겠다며 장기매매에 나섰다가 시름시름 앓아 죽고, 연인이 묘지 속으로 영원한 안식의 길을 떠난 후에야 혼령의 세계로 들어온다. 영원히 재회하지 못하는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두고두고 뇌리에 맺히는 것은 주인공 양페이와 그의 양아버지 양진뱌오가 보여주는 저 묵직한 사랑이다. 양페이는 달리는 기차의 변소에서 희극적으로 분만됐다. 만삭의 생모는 변의와 산통을 헷갈려 밑이 뻥 뚫린 기차 변소에서 양페이를 '누었고', 선로 전환공이던 스물 한 살의 양진뱌오는 기찻길 위로 떨어진 아기를 선사받았다. 생의 연대기가 오로지 양아들을 위한 지극한 정성과 사랑의 일화들로 점철된 양진뱌오는 그러나 첫 사랑에 빠지며 네 살의 양페이를 고아원 앞에 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양페이는 "내 어린 시절은 웃음소리처럼 마냥 즐거워, 나는 내가 양아버지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줄을 전혀 몰랐다"고 술회하지만, 수풀 속 네모난 바위 위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리며 밤새 양아버지를 기다렸던 양페이의 그 하루는 하루 만에 차갑게 여자를 버리고 양아들에게 내달렸던 양진뱌오에게는 생의 가장 지독한 지옥이었다. 홀로 죽기 위해 떠나기 전날 밤, 양아버지는 중년의 아들에게 말한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

올 6월 중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 '30년 문학 인생의 결정판'으로 꼽은 작품으로, 초판만 60만부를 찍으며 화제가 됐다. 이 우직하게 씌어진 희비극을 읽고 나면 중국 여배우 궁리를 일컬어 타임지가 헌정했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어진다. 위화 소설 역시 '중국이 세계에 선물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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