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MB정부의 경제 성적에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기자)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했는데…."
"흡족 하단 말씀이신가요?"(기자)
" 흡족하다기 보단 낙제점은 아닌 것 같은데…."
2011년 3월10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에 참석하러 호텔 정문을 들어선 순간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던진 '낙제점' 발언으로 곤혹한 입장을 겪어야 했다. 당시 청와대측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규제개선에 나섰는데 이는 듣기 불쾌하다"며 발언의 의도성 여부까지 따졌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유럽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8년 만에 경제성장률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고 발끈했다. 삼성측이"(대 놓고 칭찬을 잘 안 하는) 이 회장의 진의는 '100% 는 아니지만 웬만큼 했다'는 뜻"이라고 해명하며 파문은 겨우 가라앉았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이 같은 질문은 지금도 예외일 순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 경제운용에 대한 평가를 재계 총수들에게 묻는다면 과연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를 축으로 시동을 건 박근혜 정부의 지난 6개월 경제운용은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 구조 기틀을 마련, 국민들에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엔 다소 미흡했던 것 같다. 다만 임기 5년 가운데 10분의 1밖에 안된 시점의 평가는 이른 감이 든다. 앞에서 이 회장의 발언을 언급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쏟아지는 각종 경제정책을 체험하며 경륜에서 오는 직감적 판단과 경영철학이 주는 조언을 대통령이 정책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박 대통령과 10대 기업 총수들이 오랜만에 소통했다. 기업들의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요청과 9월 경제민주화 입법과 규제 등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 동안 정부의 경제정책 방점은 대선공약인 경제민주화에 모아져 어느 정권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거뒀다. 다만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이제 기업의 투자의욕과 기를 살려주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가 상충되거나 선택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대통령이 언급했듯 경제민주화가 기업들의 정당한 투자활동을 옥죄어선 안되며 독소조항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다만 재계가 경제민주화를 경영활동에 장애가 되는'신발 속 돌맹이'로 규정하는 것은 원칙과 규범을 무시하는 것이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선 경제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이제 공은 기업으로 넘어왔다. 재계는 MB정부 출범 당시 30대 그룹 기준으로 전년 대비 투자를 23%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내수ㆍ수출 부진으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기업들로선 새 시장개척과 신성장동력 찾기에 혈안이 돼있다. 한방의 홈런을 때리기는 쉽지 않다. 고성장의 환상에 빠져 실패의 쓴맛을 본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장기적으로 수익성 있는 성장과 지속 가능한 수익창출을 위해 내실경영에 더 집중하고 있다. 과감한 선투자와 고용을 대폭 늘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창조경제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창조경제는 한국경제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으로 기업들이 앞장서 실행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대통령의 구상에 힘을 싣는 덕담 정도로 들릴 수도 있지만, 혁신가치 투자에 척박한 우리 기업풍토에 대한 경종임에 분명하다.
MB정부 4년차 이 회장의 낙제점 발언은 평가자체보단 그 기조에 깔린 내용을 제대로 알았어야 했다. 소통의 노력이 부족했다. 기업 총수들을 자주 만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상황과 애로를 경청하고 경제운용의 주체인 기업들의 조언을 새겨듣는 것이 경제활성화의 첫 걸음이다.
장학만 논설위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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