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는 정국 최대 현안인 국정원 개혁 문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수사가 그간 국정원 개혁의 핵심인 국내파트의 역할, 활동 범위 등과 직접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당장 국정원 개혁 논의는 시기 자체가 늦춰질 공산이 커졌다. 논란의 핵심에 있는 국내파트가 수사 주체인 상황이라 야권과 시민사회진영도 현 시점에서 기능 축소를 주장하거나 존폐를 논하기는 어렵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29일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지만 논의 시점은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속도조절론은 국정원 개혁의 칼날이 무뎌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국정원은 전날 진보당에 대한 수사를 공개로 전환하면서 불법적인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 인한 수세적인 국면을 탈피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당분간은 정국 흐름을 국정원이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소재인 종북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시작도 못한 국정원 개혁 논의가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이날 "종북좌파들이 국회에서까지 활개를 치고 있는데 국정원의 힘을 빼자는 게 맞는 거냐"고 반문했다.
사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국정원 개혁은 당위이고 남은 건 수위와 방식'이라는 게 여야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셀프 개혁'에 무게를 두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고 국회 정보위에서의 여야간 논의도 기정사실화했다. 그런데 정치권의 기류가 급변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의 전격적인 공개 수사 전환 과정을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진보당은 "대선 부정을 덮으려는 용공조작"이라며 청와대와 국정원을 싸잡아 비난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갈린다. 한 재선의원은 "이 정도 사안이면 사전에 청와대와 조율했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언급도 자세히 뜯어보면 격려에 가깝다"고 해석했다.
반면 국정원이 사실상의 '무력시위'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까지 개혁을 언급하면서 국내정치 파트의 위축이 불가피해지자 '하필이면 왜 지금인가'라는 논란을 감수한 채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 국정원 전직 간부는 "정보기관의 속성상 국내정치 관여를 금지하되 방첩ㆍ대(對)테러는 강화한다는 여권의 방침을 조직의 위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국정원 개혁 문제는 수사 결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혐의를 입증하면 야권의 개혁 요구는 동력을 잃게 될 공산이 크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여권 전체가 '의도적인 공안정국 조성'이란 비판 속에 코너에 몰리고, 국정원 개혁은 고강도 수준이 될 게 확실하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국정원이 이번 사건 수사를 어설프게 했다면 해체 수준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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