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극의 기원 하면 흔히 고대 그리스 비극을 떠올린다. 하지만 모순과 비리가 넘쳐나는 현대를 상징하고 투영하기엔 어쩌면 풍자가 깃든 희극이 제격이지 않을까. 국립극단이 고대 그리스 희극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3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달 3일부터 잇달아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올린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을 전후해 주로 시사 문제를 풍자하는 희극 40여 편을 썼다. 국립극단은 웃지 못할 코미디로 가득한 현대 사회를 고전을 통해 비판하기 위해 아리스토파네스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국립극단은 2009년 아리스토파네스의 '새'를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섹스 파업'을 그린 그의 희곡 '리시스트라타'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은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 종종 무대에 올랐다.
박근형이 연출하는 '개구리'(9월 3일~15일)로 시작한다. 연극 '청춘 예찬' '빨간 버스' 등에서 자유로운 감수성을 그려온 박근형은 원작의 뼈대는 살리되 극의 시점을 2013년 대한민국으로 옮겨온다. 원작에선 국력이 바닥난 아테네의 재건을 위해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저승으로 떠나 비극 시인들의 격렬한 논쟁을 지켜보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반면, 이번 공연에선 신부, 동자승, 광대들이 현대 사회를 향해 '회초리'를 들 위인을 찾는 여정을 통해 한심한 국내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2부 '구름'(9월 24일~10월 5일)은 브레히트의 작품을 판소리로 공연화한 '사천가'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창극화한 '내 이름은 오동구'로 흥행몰이를 했던 연출가 남인우가 맡는다. 원작이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소피스트의 신교육정책을 비판했듯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는 지금 한국의 교육 제도를 꼬집는다. 음악을 잘 활용하는 연출가의 무대답게 기타, 베이스, 가야금 등 다양한 악기들이 전면에 나선다.
세 번째 작품 '새'(10월 22일~11월 3일)는 새로운 관점의 드라마와 참신한 무대언어로 주목을 받아온 작가 윤조병과 연출가 윤시중이 무대에 올린다. 두 명의 도피자가 새들의 나라를 찾아가 신의 왕국에 도전하도록 만드는 과정을 그린 원작과 비슷한 구도로 그려지는 이 작품에선 두 노인이 등장, 새의 왕에게 건국을 제안하며 이상적인 도시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개구리'를 연출한 박근형씨는 현재 한국 사회를 그리스 희극에 투영하려 한 시도에 대해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들을 보면서 고대 그리스 이후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생각하게 됐다"며 "인간사 모순과 본질은 돌고 도는 만큼 2013년 한국을 얘기하는 데 고대 희극이 적절하다 본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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