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해 대선 당시 선거개입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을 겨냥한 대형 공안사건이 불거지면서 그 배경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정원이 국내정보파트 축소 및 폐지 등 개혁 요구가 거센 현 정국의 국면전환을 꾀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0년부터 약 3년간 이 의원을 비롯한 압수수색 대상자들을 내사해 왔다. 하지만 이날 이 의원의 자택 및 국회의원회관 사무실 등 18곳에 대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내사는 자연히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보안을 중시하는 공안사건의 특성 상 수사대상자의 신병 확보 전 수사 착수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국정원은 당초부터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직후를 압수수색의 적기(適期)로 보고 시기를 저울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영장 청구 약 2주 전인 이달 중순경 대검찰청 공안부에 이번 압수수색 절차에 대한 지휘를 요청했으며, 대검과 영장 청구 및 집행 시점을 조율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공안당국 주변에선 당초 국정조사가 끝난 직후인 23~25일 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주말이 낀 점 등을 감안해 압수수색이 미뤄졌다는 말도 나온다. 국정조사로 국정원에 비판과 개혁요구가 정점에 달한 시점에 이번 사건을 알려 사태를 무마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또 대형 공안사건 공개로 '방첩 활동의 중요성'을 환기시킬 기회도 얻게 됐다. 국정원은 그간 비등하는 국내파트 축소ㆍ폐지론에 대해 "간첩, 스파이 활동을 포착하려면 국내 파트 존립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고수해왔다.
과거 정치개입 논란 때마다 비판을 받아 온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대선 직전 서울 강남구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다시 개혁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뒤이은 검찰수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심리전단의 여론조작 활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국정원 축소 또는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등 입지가 계속 축소돼왔다.
한편 검찰은 공안정국 조성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영장 청구 등을 지휘할 뿐 구체적인 수사에는 관여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수원지검 공안부는 이날 최태원 부장검사를 포함해 공안부 검사 4명과 수사관 8명을 이 사건에 전원 투입하고 대공수사 전문 검사 2명을 타청에서 지원받아 전담팀을 꾸렸다. 수원지검 측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고 사건 송치 이후 원활한 수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검찰까지 가세해 대대적인 공안정국 조성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수원=김기중기자 k2j@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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