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죽는 게 가장 두렵지 않고 즐거운 '노인 천국'이 조선이다."
구 한말 선교사로 우리나라를 찾아 고종 황제의 정치 고문으로 활약했던 미국인 의사 호러스 알렌의 감탄이 130년 만에 무색하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노인을 극진하게 모셨던 대한제국과 달리 21세기 대한민국은 노인들이 경기침체의 최대 희생자가 되는 사회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7일 내놓은 '경제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빈곤율 변화'자료에는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버림받은 첫 세대'인 우리나라 '65세 이상' 연령층의 고단한 삶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33개 OECD 회원국의 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 인구비율) 추이를 분석한 결과, 유독 한국에서만 노인층 빈곤율 증가가 극심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20조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 넣은 결과 2011년 말 한국의 전체 빈곤율 증가폭은 3년 전에 비해 0.1%포인트에 그쳐 OECD 국가 중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잘 극복한 나라로 손꼽힐 만했으나, 노인 빈곤율은 평균의 19배인 1.9%포인트나 높아졌다. 2011년 노인 100명당 빈곤층이 무려 77명 선까지 늘어난 것이다.
높은 실업률에 대한 우려로 각종 정부 혜택이 집중됐던 청년 계층(18~25세)의 빈곤율은 같은 기간 0.6%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고, 17세 이하 아동의 빈곤율은 오히려 1.5%포인트 낮아졌다. 노인들이 어렵게 모아 놓은 노후자금을 자식 사업자금으로 날리고, 부러질 듯 아픈 허리를 참아가며 손자를 돌보는 동안 정부가 구휼을 위해 지출한 20조원의 복지 예산이 노인보다는 젊은 층에게 더 많이 쓰여진 것이다.
반면 같은 위기를 거치는 동안 다른 나라들의 세대별 빈곤율 변화 추이는 180도 달랐다. 노인 국가인 일본의 경우 아동, 청년층이 각각 1.4%포인트 높아진 반면 노인 빈곤율은 2.2%포인트나 하락했다. '불황일수록 노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미국(-2.4%포인트), 영국(-3.6%포인트), 스웨덴(-0.5%포인트)의 노인층 빈곤율도 하락했다. OECD 33개 회원국의 평균 노인 빈곤율이 2.7%포인트나 내려간 것도 이 때문이다.
황원일 숭실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 주요국 가운데 노인 계층에 대한 재정지출이 가장 적다"며 "2009년 36.7%였던 노인 취업률이 올해 6월 40.9%까지 상승한 것도 자녀나 정부에게 의지할 수 없는 우리사회 노인들의 고달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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