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의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검토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27일 서울 마포구 건보공단 강당에서 열린 '흡연의 건강영향 분석 및 의료비 부담' 세미나에서 "국민건강보험의 국민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이 필요하며 담배회사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준 담배회사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손배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지난 4월 개인이 KT&G를 상대로 낸 담배소송을 대리한 배금자, 정미화 변호사 등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었고, 지난달에는 미국에 직원을 보내 담배소송 사례를 수집한 뒤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시기만 못박지 않았을 뿐 소송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는 의미다.
이날 세미나에서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인 남녀 132만명의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 흡연이 암, 심뇌혈관질환 등 주요 질환에 방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남성 흡연자는 흡연자에 비해 질병 발생위험도가 후두암은 6.5배, 폐암은 4.6배, 식도암은 3.6배 높았고, 여성의 경우 후두암은 5.5배, 췌장암은 3.6배, 결장암은 2.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공단이 담배회사 소송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공신력 있는 자료가 확보됐고,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재정의 압박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 교수는 "2011년을 기준으로 흡연으로 인해 초래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1조6,914억원으로 계산됐다"며 "이는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46조원의 3.7%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밝혔다.
지난해 건보공단이 낸'2011년 하반기 건강보험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흡연으로 인해 뇌혈관 질환에 3,771억원, 고혈압에 3,470억원, 기관지ㆍ폐암에 1,987억원, 위암에 1,048억원이 들었다. 뇌혈관 진료비는 2007년 2,331억원에서 2011년 3,711억원으로 4년 새 62%가, 2007년 1,297억원이었던 기관지ㆍ폐암 진료비는 2011년 1,988억원으로 53% 증가했다. 국민건강보험법 58조는 제3자로 인해 건강보험 진료비가 쓰이면 건보공단이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돼있다.
법조계에서는 건보공단이 소송을 낼 경우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미화 변호사는 "개인이 제기한 담배소송은 법원이 쉽게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건보공단은 명백한 피해 자료를 갖고 있고 공익적 의미가 커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며 "최대 20조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흡연으로 인한 건보 진료비 약 1조7,000억원에 10년(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을 곱하고 이자를 붙여 추정한 것이다.
배금자 변호사는 "담배소송은 일종의 '파워게임'으로 담배회사가 소송을 낸 개인을 물적으로 파산시키는 전략을 건보공단을 상대로 쓰지는 못할 것"이라며 "건보공단이 소송을 낸다면 국내 담배소송의 대전환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개인이 제기한 담배소송은 1999년 방모씨 등 폐암환자 32명이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등 3건으로, 하급심에서 모두 패소한 뒤 대법원의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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