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대형 스마트 폰으로 모퉁이를 둘러싼 한 가게가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팬택이 신형 베가 LTE-A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문을 연 팝업스토어. 같은 시각 이 곳에서 약 20㎙ 떨어진 길 건너편에는 커피숍을 꾸며 만든 LG전자의 G2 팝업스토어는 젊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두 매장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보니 제품과 매장을 비교하는 이들이 많았다. 냉정한 평가도 주저 없었다. 대학생 차모(24)씨는 "지문을 등록하면 화면 잠금을 풀거나 애플리케이션을 숨길 수 있는 베가폰 기능이 인상적"이었다며 "G2는 매장꾸미기만 신경 썼을 뿐 제품은 훌륭한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박모(33)씨는 "LG가 전력투구했다더니 역시 G2의 디자인도 좋고 잡을 때 느낌이 딱 오더라"며 "베가폰 매장 컨셉트는 가로수길 수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LG전자와 팬택의 '가로수길 혈투'는 국내 스마트폰 2위 자리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회사가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절박한 상황임을 그대로 보여줬다. 두 회사는 하루 차이(팬택 7일, LG 8일)로 가로수길에 홍보 매장을 열었다. 둘 모두 특정 제품을 내놓으면서 별도 홍보 매장을 연 것이 처음일 만큼 공을 상당히 들였다.
LG전자 관계자는 "가로수길의 'G'와 G2의 'G'를 연계해 홍보하려는 것일 뿐"이라 했고, 팬택 관계자는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구매력이 충분한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이곳을 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차피 경쟁해야 한다면 맞대결에서 이기는 것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팬택 관계자는 "홍보, 마케팅을 위한 총알이 모자란 우리로서는 경쟁자와 맞대결해서 얻는 게 더 많다"고 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저쪽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도 "소비자들이 분명히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나쁠 것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맞장 마케팅'은 위기에 닥친 회사들이 즐겨 쓰는 끝장 전략이다. 출혈 경쟁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파격을 택하지 않고서는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1위 현대차는 갈수록 거세지는 수입차들의 공세에 맞서 논현동 도산공원 네거리의 6층 건물 전체를 새 전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리모델링 중이다. 내년 상반기 오픈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이 곳은 바로 건너편 BMW, 대각선 맞은 편 벤츠를 비롯해 100㎙ 안에 수입차 전시장 수십 개가 자리하고 있는 말 그대로 '수입차의 텃밭'이다. 건물 소유주이자 인피니티 국내 판매사였던 에스에스모터스 측이 지난해 7월 인피니티 판매권을 반납했고, 현대차가 건물을 통째로 2019년까지 임차 계약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i30가 폴크스바겐 골프에 밀리고, 제네시스의 판매량은 BMW 5시리즈보다 못한 상황"이라며 "비교 시승 행사 정도로는 수입차의 공세를 꺾기 쉽지 않다는 판단 아래 경쟁자의 안방에 근거지를 만들어 경쟁자들이 무작정 시장 확대에만 신경 쓰지 못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의 역공에 수입차 업계는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가 청담동 명품 브랜드와 손잡고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차가 물량 공세에 나선다면 수입차들의 세 확장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컨셉트, 개장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작전 노출을 꺼리고 있다.
일찍이 이 근처에선 한바탕 '가구대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1년 업계 2위 리바트는 930평(3,075㎡) 규모의 복합 전시 공간 '리바트 스타일 숍'을 열었다. 한 건물 건너 바로 이웃에는 이미 업계 1위 한샘이 2000년부터 1,600평 규모의 복합 전시 공간을 운영 중이었다. 일종의 '맞장 승부'를 위해 리바트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다만 내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맞장 자체만으론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 업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한샘의 승리였다. 한샘은 온라인 유통망 확충 등에 눈을 돌려 시장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해 유일하게 상승세를 탄 반면 다른 업체들은 그런 대응을 하지 못해 건설악화와 함께 수익성 악화에 힘들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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