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민생회담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여야 지도부와 만나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둘러싼 대치 정국을 푸는 해법으로 제기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의 회담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회담의 형식과 의제는 각각'5자 회담'과'민생 법안 처리'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민생 법안의 시급하고 원만한 처리"라며 "민생과 연계된 5자 회담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대통령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등 국회 정상화를 위한 야권의 4개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멀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달리 말하면) 야당이 주장하는 의제로는 만날 수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작금에는 부정선거까지 언급하는 데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가 "민생과 거리가 먼 정치와 금도를 넘어서는 것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정치를 파행으로 몰게 될 것"이라며 장외 투쟁 중인 야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날 회담 제안은 '정쟁 대 민생' 구도를 내세워 야권의 장외투쟁을 압박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청와대가 침묵만 지키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해소하면서 정국 경색의 책임을 야권에 돌리는 포석을 깐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그간 야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선에서 여야간 물밑 접촉이 이뤄졌으나,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이 정면 돌파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당장 민주당은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이 없이 민생만 논하자는 것은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국정원 문제를 포괄하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간 양자 회담을 역제의했다. 이달 초 청와대의 5자 회담 제의에 대해 민주당이 양자회담으로 되돌렸던 '핑퐁 게임'이 재연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회담의 불씨가 사그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원 개혁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개혁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한 것이지만, 야당과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회담 의제가 민생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국정원 개혁까지 포함된다면 전격적으로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권은 야권의 협조 없이 민생 법안 처리가 어렵고, 야권은 민생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어 마냥 시일을 끄기에 양측 모두 상당한 부담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양측이 공을 서로 주고 받으며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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