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낳고 이직을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신 덕분이죠. 이직 후 팀이 없어지면서 직장 내 입지가 애매해졌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인데다 둘째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회사를 관뒀습니다. 둘째를 낳고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근무는 무리였죠. 그래서 시간제 정규직에 도전했어요.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후 10시까지 출근해 2시까지 근무하고, 첫째가 학원에 돌아오는 3시까지 맞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 만족합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김영미(38)씨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요리정보 포털사이트와 대기업 급식업체에서 10여년간 마케팅 경력을 쌓았다. 영양사와 한중일 조리기능사 자격증까지 딴 그는 첫째를 낳은 이후 이직에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둘째를 임신한 그에게 무언의 압력이 가해졌고, 회사를 그만둔 후 재취업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CJ제일제당의 시간제 일자리인'여성리턴십 프로그램'을 보고 지원해 1기로 뽑히게 됐다. 김씨는 6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CJ제일제당의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될 예정이다.
경력단절여성(경단녀)들에게 최근 희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일과 가정 양립을 원하는 주부들을 고려해 원하는 시간에 근무가 가능한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들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은 또 출산 후 퇴사를 막기 위해 육아휴직제도를 강화하고, 복귀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한편 일하는 엄마를 위한 보육시설을 늘리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근무시간 선택이 가능하고, 임금이나 복리후생이 정규직과 차이가 없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 1,000 여개를 신설한다고 26일 밝혔다. 신세계 계열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우선 경력이 단절된 매장의 점장이나 부점장 출신의 여성 인력 100여 명에게 시간 선택제 일자리를 제공한다. 또 신규 점포를 중심으로 800명을 시간 선택제로 새로 채용할 계획이다. 신세계 측은 "고객이 몰리는 특정 시간대에 시간 선택제 근로자를 투입하면 기존 직원의 업무 피로도를 줄이고 서비스 수준도 높일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CJ와 SK텔레콤도 경단녀 일자리 창출에 동참했다. CJ그룹은 5년간 5,000개 여성 일자리 목표로 하는 '여성 리턴십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1기 리턴십 150명에 2,530명 지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루 4시간 시간제와 오전 8시30분~오후5시30분 전일제 두 가지 중 선택하면 된다.
SK텔레콤도 '4시간 근무 워킹맘 제도'를 신설하고 올해 경력단절 여성 250명을 채용한 데 이어 추가로 100여명을 모집한다. 정규직 지위, 4대보험, 승진기회는 그대로 유지된다.
포스코는 지난 2011년 10월 생산성 향상과 근로자들의 휴무여건 개선을 위해 4조 2교대 근무제도를 도입했다. 작업조를 4개 조로 편성해 2개 조가 각각 주간조(7~19시), 야간조(19~7시)로 나눠 12시간씩 근무하고, 나머지 2개 조는 휴무하는 교대근무 형태로 휴무일수를 80일 이상 늘렸다. 또 2007년부터 매년 생산직 주부사원을 채용, 시험분석, 품질검사 등 생산기술직에 배치하고 있다.
보육시설 확충 등을 통해 근무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처음부터 그만두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지원도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1년부터 초등학교 이하 자녀를 둔 임직원을 대상으로 '재택·원격근무제'를 도입한 데 이어 어린이집을 추가로 개원하고 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따른 것으로, 지난해에는 여성 채용비중이 30%이상으로 확대됐다. 삼성은 또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서울 여의도와 전남 여수 등에 그룹 공동 직장 어린이집 개설을 준비하고 있으며, 여성인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 가정 양립지원제도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운영하고 있다. 또 올해 초 비정규직 직원 2,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중 60%가 여성인력이다.
농심은 26일 서울 신대방동 본사 부지에 전체면적 460㎡규모의 2층 단독 건물을 완공하고 다음달 2일부터 어린이집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또 임신한 직원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도 도입한다.
앞서 롯데그룹이 지난 해 9월 출산휴가 후 별도 신청 없이 자동으로 1년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 2월과 6월 현대백화점과 SK그룹도 차례로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김태현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력단절여성을 확보해 생산력을 높이는 게 필수"라며 "여성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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