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6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첫 공판에서 그의 혐의를 '신종 매카시즘'이라 지칭했다. 검찰이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반 공산주의 광풍에 비유해 국정원의 행태를 공개 비판한 것은 그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종북 세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개입 행위를 지시한 행위가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선거개입 행위로 변질된 만큼 원 전 원장이 법적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원 전 원장 측은 "검찰이 국정원의 정당한 활동을 지나치게 축소해 해석하고 있다"며 "원 전 원장은 선거와 정치 개입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어 향후 재판 과정에서의 팽팽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1시간 가까운 모두발언을 통해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특히 검찰은 북한과 유사한 주장으로 정부 정책 등에 반대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예외 없이 종북 세력으로 지목한 원 전 원장의 '잘못된 종북관'을 꼬집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기존의 국정원장과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직원들에 대한 지시 역시 통상의 국정원 활동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대한 일종의 배경 설명이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2010년 전 부서장 회의에서 "판사도 적이 돼 (종북 세력) 처벌이 안 될 것이다. 다 똑같은 놈들일 텐데"라고 한 발언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날 공판에서 양측은 심리전단을 통한 인터넷 댓글 활동 등이 국정원의 통상 활동인지 여부와 원 전 원장이 이를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 등 핵심 쟁점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다.
검찰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댓글 작업 등은 국정원의 통상 활동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정원법은 국내 정보 활동을 대공과 대정부, 대테러 정보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더구나 원 전 원장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를 직접 지시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반면 원 전 원장은 "통상의 국정원 활동이고, 댓글 활동 등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조폭이 피해자의 목을 졸라 죽이면 사형이지만 판사가 사형을 선고하고 교도관이 이를 집행하면 범죄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자신의 행위가 사형 선고와 집행처럼 법에 따른 정당한 활동이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향후 공판에서 심리전단의 '조직적' 활동을 한층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원 전 원장은 취임 직후 3차장 산하에 있던 심리전단을 독립부서로 편제하고, 사이버팀도 2012년 2월까지 4개 팀, 70여명으로 확대했다. 검찰은 이날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은 매월 전 부서장 회의, 매일 '모닝 브리핑' 등을 통해 전 직원에게 전달됐다"며 "활동 결과는 보고서로 작성돼 원 전 원장에게 보고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2012년 1월27일 부서장 회의에서 "직원 업무 수행에 오해가 유발되지 않도록 신경 써달라"고 말한 대목을 반박하기 위해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원 전 원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켰다는 국정원 측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야당 인사라도 정부정책을 지지하면 밀어버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도 잘 차단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재판부는 10월 6일까지 매주 한차례 집중 심리를 진행한다. 9월 2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서는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이 첫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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