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제주의 삶 8년째 거칠어진 손마디에 기타 못칠까봐 걱정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주의 삶 8년째 거칠어진 손마디에 기타 못칠까봐 걱정도"

입력
2013.08.26 11:43
0 0

"그땐 평생 음악을 안 할 생각이었어요. 전혀 미련이 없었죠.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될지 몰라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괜히 걱정거리를 놓고 가는 것 같았거든요."

한국 포크 록의 대표 주자인 장필순(50)이 명반 '수니 6'(Soony 6) 이후 무려 11년 만에 정규 앨범 '수니 세븐'(Soony Seven)을 27일 내놓았다. 2009년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함께 만든 CCM(대중음악 형식의 기독교 음악) 앨범 이후론 4년 만이다. "6집 작업 끝나고 음악을 손에서 놓았죠. 음악 자체에 지쳤다기보다 음악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에 지친 것 같아요."

6집을 내고 3년이 지난 2005년 그는 목적도 계획도 없이 제주로 내려갔다. 모아둔 돈도 없었고, 생계 대책도 없었다. 거처는 여행을 다니며 눈 여겨 봤던 제주 서부의 애월읍으로 정했다. 직접 장작을 패야 난방을 할 수 있는 외딴 시골집이었다.

"외로웠죠. 처음엔 많은 걸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많이 줄었으니까요. 손도 점점 거칠어져서 이러다 기타를 못 치게 되면 어쩌나 우울해지기도 했어요. 제주로 내려온 게 잘한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새롭게 들리고 보이는 게 많아지더군요."

도시를 떠나자 삶은 간결해졌다. 해가 뜨면 일어나 여섯 마리 개들에게 밥을 주고 텃밭에 나가 채소를 돌보다 밥 먹고 산책한 뒤 책을 읽는 일상. 밤이 되면 주변 지인들을 만나 물회에 소주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그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갔는데 살아지더라"라고 했다.

제주로 떠나기까지 장필순의 20년 음악 여정은 순탄했다. 1983년 보컬 듀오 '소리두울'로 활동하며 내공을 쌓은 그는 1989년 '어느새'로 데뷔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조동진 조동익 형제와 교류하며 4집 '하루'(1995)부턴 싱어송라이터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동익 윤영배와 함께 작업한 5집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1997)와 6집 '수니 6'(2002)은 그의 정점이자 한국 대중음악의 귀중한 유산이다.

제주에 있는 동안에도 그가 음악을 놓지 않게 해준 사람들은 선후배 음악인들이었다. 윤종신 이승열 함춘호 같은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영영 음악을 잊고 살았을지 모른다. '결국 봄'(윤종신),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두번째 달), '블루이'(이승열) 같은 곡은 신곡을 기다리는 팬들에게도 단비가 됐다.

7집은 사실상 제주의 삶을 담은 첫 앨범이다.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살다 보니 추상적 표현이 많아진 것 같다"는 그의 설명처럼 삶의 구체보단 자연의 추상이 많이 담겼다.

'머나먼 시간의 빛 줄기 따라서 / 기억의 방 창문으로 흘러 흘러 / 너의 꿈 속으로'('맴맴') '떠나버린 꿈 같던 시간 / 기억나지 않는 나의 시 / 깊이 잠들었던 그리움 / 소리 없이 날개를 편다'('휘어진 길') 등 자연과 삶을 아늑하고 포근한 은유로 풀어낸 가사가 9개 노래에 담겼다. 전작들처럼 포크에 한정하지 않고 록, 일렉트로닉, 재즈, 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다.

녹음은 장필순의 제주 집에서 했다. 녹음 작업은 개들이 짖는 소리 때문에 새벽 시간에만 가능했다. 잡음 때문에 고감도 마이크도 쓰지 못 했다. 7집은 그의 표현대로 하면 "진이 빠질 정도로 한 곡 한 곡 많은 정성을 들인 앨범"이다.

그는 새 앨범이 어렵게 음악을 하는 후배들에게나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줬으면 한다고 했다. "앨범을 녹음하며 생각했어요. 제주에 내려가길 정말 잘했구나, 하구요. 음악에 대한 내 생각, 내 자세를 변함 없이 지킬 수 있었던 게 제주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듣는 분들이 복잡한 삶 속에서 제 음악을 들으며 기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용기를 내서 만든 이 앨범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음악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