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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8월 27일] 시리아내전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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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8월 27일] 시리아내전 다시 보기

입력
2013.08.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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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주재 일본 대사(2006~2010)를 역임한 구니에다 마사키(國技昌樹ㆍ67)가 지난해 출간한 는 국내 출간된 단행본 가운데 시리아 내전을 본격적으로 다룬 유일한 책이다. 40년 외교관 생활의 상당 부분을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등에서 근무한 '아랍통'인 저자는 시리아 근무 경험과 현지 정ㆍ재계 인맥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시리아 내전의 이면을 보여준다.

구니에다는 시리아 사태를 "아랍의 봄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이해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시리아 내전은 분명 알 아사드 정권의 40년 세습통치에 맞서는 민중봉기이지만, 한편으로 과격 이슬람 세력, 특히 무슬림형제단이 사태를 주도한 측면 또한 강하다는 것이다. 시리아 인구 10%에 불과한 알라위파(이슬람 시아파의 분파) 출신으로 세속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권과, 다수 종파인 수니파를 대변하며 무력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갖춘 무슬림형제단은 여러 차례 봉기와 진압을 반복하며 갈등해왔다.

세계 언론이 이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악한 정권, 선한 시민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시리아 내전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비판이다. 평화적 시위를 무력진압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알 아사드 정권이 민주적 개헌, 각종 악법 폐기 등 다양한 유화책을 동원하며 1년 가까이 정치적 해결을 시도한 점도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무장투쟁을 완강히 고수하는 반정부세력의 입장을 대변, 사태 조기 해결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가 열거한 편파 보도 사례 중엔 반정부 투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13세 소년 함자 알 카티브 사망사건도 있다. 시위 참가 중 행방불명된 지 한 달 만에 총알이 박히고 성기가 잘린 채 돌아온 소년의 참혹한 주검을 두고 반정부세력은 당국에 의한 납치 고문을 주장했고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정부는 이후 소년은 총상만 입었고 고문의 증거로 제기된 피부 손상, 성기 절단 등은 신원 확인 지체로 시신이 부패한 결과로 보인다는 검시 결과를 내놨지만 언론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저자는 한때 반정부 시위대 규모가 100만명에 달했다는 보도에도 의문을 제기하며 정부가 추산한 13만5,000명이 진실에 가깝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 역시 편파적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시리아 정권이 언론을 통해 치러지는 '프레임 전쟁'에서 수세에 몰렸다는 진단만큼은 동의할 만하다. 언론이 만든 뉴스의 틀(프레임)에 따라 재단된 현실이 '진짜 현실'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내전 초기 외신기자들을 모두 추방한 이후 알 아사드 정권을 둘러싼 언론 환경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시리아 내전 상황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는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아는 각각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즉 시리아 정권에 적대적인 걸프 왕국의 왕족이 소유한 매체다. 시리아를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적대시해온 미국이나 유럽 언론 역시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자국 정부의 입장에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다. 반면 시리아 국영TV는 아랍연맹의 제재로 위성 송출이 중단됐고, 국영통신도 잦은 사이버 공격으로 운영에 곤란을 겪고 있다.

한국외대 김수완ㆍ이상욱 교수의 최근 논문에 따르면 국내 신문이 시리아 내전을 보도하며 현지 언론을 인용하는 비율은 전체의 2.6~6.4%에 그쳤다. 반면 뉴욕타임스 가디언 CNN 등 미국ㆍ유럽 매체의 인용 비율은 33.3~33.9%로, 아랍권 매체(6.8~7.0%)의 5배였다. 외국 언론의 프레임에 의존해 시리아 내전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우리는 좀더 판단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10만명의 사망자, 200만명의 난민을 양산하며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내전의 절대적 책임이 알 아사드 정권에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명확한 가치 판단이 가능해 보이는 사안일지라도 객관적으로 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우리는 언제든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훈성 국제부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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