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늦은 술자리를 나와 택시를 탔다. 차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졸음이 밀려왔다. 그때 택시기사가 말을 걸었다. "여기 재밌는 게 들어있어요." 그는 블랙박스를 가리켰다. 재밌는 거? 기껏해야 취객들의 싸움이겠지 뭐. 내 심드렁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개가 있었어요. 양화대교에요." 그제야 나는 룸미러에 비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에서 곱게 키우는 개였어요. 그런 개가, 차도를 횡단하는 게 아니라 차들과 나란히 달리는 거에요. 몸짓도 작은 주제에 말이죠. 깜빡이를 켜듯 왼쪽 오른쪽을 살피며 차선도 자꾸 바꾸더라고요. 다들 난리가 났죠. 비상등을 켜고 클랙슨을 누르고." 신호등이 떨어지자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번에는 내가 뒷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나는 노들길로 접어들어야 했는데, 그 녀석도 그러는 거에요. 허 참. 시내였으면 차에서 내려서라도 보도블록 쪽으로 쫓아버렸을 텐데. 그런데 2킬로는 족히 같은 방향으로 달리던 녀석이 별안간 중앙분리대를 건너가더군요. 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 같기도 했고 녀석의 비명이었던 것도 같고. 그 소리가 계속 마음에 걸려요." 내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죽었을까요?" 택시기사가 다시 블랙박스를 가리켰다. "몰라요. 하지만 그 녀석, 여기 들어있긴 하거든요. 이런 기분은 뭐라 해야 할까요?"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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