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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그 컴퓨터 좀 빌려 주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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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그 컴퓨터 좀 빌려 주구래”

입력
2013.08.2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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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9월 25~30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열기로 했다. 23일 판문점 실무 접촉을 통해 양쪽 적십자가 합의한 내용은 남북 각각 100명이 종전 방식대로 만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단체 상봉에 이어 개별 상봉을 하고 금강산관광을 한 뒤 다시 헤어지는 방식이다. 물론 계속 울면서.

더 나은 상봉 방식이 없을까도 싶지만, 2010년 10월 이후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겨우 재개되는 일이니 상봉방식 개선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추석 전에 만나면 더 좋았겠지만 준비기간이 너무 촉박해 추석을 각자 쇤 뒤 만나게 된 것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9월의 상봉 이후 11월까지 한 차례 더 상봉행사를 한다는 점, 10월 22~23일 화상 상봉도 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아쉬운 것은 우리측 주장대로 이산 상봉을 정례화하지 못한 점이지만 어떻게든 빨리, 자주 만나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1988년 이산가족 상봉 신청 접수 이후 올해 7월까지 북에 있는 가족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12만 8,842명이나 된다. 이 중 5만여 명이 벌써 세상을 떴다. 요청자 중 80% 이상이 70대 고령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빨리 만나게 해주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만나게 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우리의 행정전산망이나 보건의료 전산망은 세계 일류 수준이다. 궁금한 사람의 필요 정보나 자료를 신속하게 구할 수 있고, 사람과 일의 관리업무도 충실하고 신속하다.

북한은 다르다. 이산가족의 자료가 꾸준히 관리되지 않아 각지에 흩어진 대상자들을 파악하고 생사와 건강을 확인/점검하는 데 오랜 시일이 걸린다. 그래서 상봉을 하는 이산가족은 항상 소규모인 100~150가족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남과 북은 이번에 29일 200~250명 정도의 생사확인 의뢰를 상호 요청하고, 9월 13일 회보서를 주고받는 데 이어 9월 16일 상봉을 위한 최종 명단을 교환키로 했다. 그런데 북한이 이 일정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좀 걱정스럽기도 하다.

행정이 낙후돼 있고 전산망 개발 속도가 늦은 북한으로서는 우리가 몹시 부러울 것이다. 10여 년 전 남북 실무자가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사람 찾는 일이 화제가 됐다. 우리 실무자는 신이 나서 “우리는 컴퓨터 두들기기만 하면 금방 찾아낸다.”고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북한 실무자가 매우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그 컴퓨터 우리 좀 빌려주구레.” 그러더란다. 컴퓨터만 가져가면 북한 사람들의 정보도 쫘악 나오는 줄 알았던 탓이다. 말이 빌려달라는 거지 사실은 거저 달라는 거다. 우리 실무자는 북한 사람의 그 말이 우스웠지만 차마 웃지를 못했다. 오히려 안쓰럽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남쪽은 벌써 저마안큼 앞서 나가 있는데 북쪽은 아직도 여기에서 기듯 헤매고 있다. 인민은 굶주리는데 핵무기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쟁이처럼 키가 작은 인민군 병사들을 보면 헐벗고 굶주리던 시대의 우리 시골 아이들 생각이 난다.

그러니 이 참에 그 북한 실무자의 말처럼 컴퓨터를 빌려주고, 아니 아예 주고 북한 전산망, 인력 정보망 따위를 진짜로 우리가 개발해 운영하면 어떨까. 그러면 이산가족 상봉도 훨씬 수월해질 테고, 북한의 개방도 앞당겨질 수 있을 테지.

아차차, 이거 내가 너무 나갔나? 북한은 컴퓨터를 주면 받겠지만, 정보망까지 내줄 정도의 바보는 결코 아니다. 그러니까 컴퓨터를 켜면 무조건 남쪽을 좋아하게 되고 마음이 착해져서 남침 야욕을 버리고 대한민국에 귀순하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슬쩍 넣어서 선물하는 건 어떨까?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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