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의 살인 혐의를 보고하자 피고인이 주먹으로 왼쪽 귀 부분을 갈기고 컵을 던졌다. 몸이 휘청거렸고 입에서 피가 났다."(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장) "권투를 배운 적이 없고 그렇게 큰 타격력도 없다. 기회주의적인 얼굴을 참을 수 없어 따귀를 한차례 올린 것뿐이다."(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25일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 제5법정에서 증인과 피고인의 신분으로 18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이렇게 맞섰다. 사회주의는 찬양하고 범죄는 엄단하는 창홍타흑(唱紅打黑) 정책의 찰떡 궁합이었던 두 남자는 따귀 한 대의 진실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뇌물 수수, 공금 횡령, 직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보 전 서기에 대한 나흘 째 공판에선 그가 왕 전 국장을 해임한 과정이 직권 남용이었는지를 집중 심리했다. 이 과정에서 왕 전 국장이 보 전 서기에게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살해 사건을 보고한 직후 정황이 상세하게 공개됐다.
보 전 서기의 진술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8일 왕 전 국장은 구카이라이가 영국인 닐 헤이우드를 살해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보 전 서기에게 귀띔했다. 보 전 서기는 그날 밤 곧바로 구카이라이에게 진상을 물었고 구카이라이는 펄펄 잡아뗐다. 보 전 서기가 다른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고 하자 구카이라이는 모두 왕 전 국장이 시킨 대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가 과음으로 사망했다는 의사 소견서에 헤이우드 부인이 서명한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보 전 서기는 왕 전 국장이 자신의 부인을 모함한 것으로 판단했다. 왕 전 국장이 제보를 받고도 평소 그를 가장 신임했던 구카이라이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자신에게 귀띔한 것은 표리부동한 이중적 태도로 여겼다. 보 전 서기는 다음날 왕 전 국장을 불러 의도를 물었고 왕 전 국장이 아무 말 하지 못하자 화가 치밀어 따귀를 날렸다. 23일 법정에서 구카이라이에 대해 "미쳤다"고 한 보 전 서기는 이날 "27년이나 함께 산 부인을 믿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연약한 여인이 살인을 하느냐"고도 덧붙였다.
왕 전 국장은 그러나 법정에서 "따귀가 아니라 주먹으로 맞았으며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왕 전 국장은 "사실을 직시하라고 했더니 보 전 서기가 물컵을 바닥에 집어 던지면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며 "이후 3명이 나를 미행했고 결국 2월 6일 부당하게 면직 처분됐다"고 밝혔다. 이후 보 전 서기가 자신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운 나머지 미국 영사관으로 도피했다고 왕 전 국장을 말했다.
보 전 서기는 왕 전 국장을 면직한 것은 직무 조정 과정의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왕 전 국장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20년간 공안에 몸담으며 몸이 나빠졌으니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왕리쥔은 품성이 악랄해 제멋대로 지껄이며 그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도 했다. 왕 전 국장이 미국 영사관으로 간 것과 관련해 보 전 서기는 "냉정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착오이자 과실로 당과 국가의 명예에 누가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죄가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당시 구카이라이를 비호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이 때문에 법을 어긴 적도 없다"고 항변했다. 4일 간의 재판에서 보 전 서기는 자신의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공판은 26일 오전 8시30분 속개된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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