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원광연의 싸이아트/8월 26일] 예술과 과학의 다리놓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원광연의 싸이아트/8월 26일] 예술과 과학의 다리놓기

입력
2013.08.25 12:04
0 0

필자는 과학자다. 아니, 과학자라기보다는 공학자, 그러니까 영어로는 엔지니어다. 일반인들에겐 과학자나 공학자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학자와 공학자의 차이는 예술가와 다자이너의 차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아무튼 과학, 공학, 기술 모두 싸잡아서 과학이라고 하자. 아마 필자가 다른 과학자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필자의 연구 대상이 문화예술이라는 점일게다. 그러니까 예술창작이라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과학적 체계 내에서 연구해 보자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과학과 예술이라는 상반된 영역을 동시에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 하나가 있다. 과학과 예술을 융합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을 각 개인, 조직, 도시,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여 낸다는 것이 아마도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창조경제란 구호 이전에 선행되어야할 조건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언젠가 미국 보스턴을 방문했다. 보스턴은 미국에서도 가장 창조적인 도시 중 하나다. 무엇보다 하버드대와 MIT가 지하철 두 정류장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MIT 방문이었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MIT 지하철역에 내렸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하철 역의 긴 담벽에는 MIT의 오랜 전통과 학교를 빛낸 사람들, 연구 결과들이 벽화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홍보용 전시가 아니라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이것이야말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아닌가!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해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분야 이외에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현대 예술은 너무 난해해서 일반대중은 물론 예술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그런 점에서는 과학도 마찬가지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과학과 예술인데 이걸 융합한다는 것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전 먼 별나라 이야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멀리 있지 않다. 언젠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저녁 시간에 바람쐬러 길거리에 나왔다가 우연히 청소년 뮤지컬을 관람했다. 왠만한 성인 배우들 빰치는 실력이었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청소년 뮤지컬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사교하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극장 건너편에는 시립미술관이 있고, 그 옆에는 과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과학관은 예술 행사는 물론 각종 공공 행사에 시설을 빌려 주고, 시립미술관은 과학기술 학술대회나 기업 컨벤션에 전시실을 개방한다. 그러니까 예술을 매개체로 과학자들과 벤처 기업가들이 모이고, 과학은 예술가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학술행사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기업 컨벤션은 컨벤션 센터에서, 미술 전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음악 연주는 공연장에서 해야하는 걸로 굳게 믿고 있다. 각 분야 그들끼리만의 잔치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의 첫 단계는 선입관을 버리고 벽을 낮추는 것이다. 오래된 예이지만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전자예술의 뒤에는 '예술을 위한 엔지니어들의 모임'이 있었고 한 때 2,000여 명의 엔지니어가 예술가들을 '뒷바라지'했었다. 오스트리아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예술을 실험하는 연례행사로서 히틀러의 고향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고 제조산업 중심의 지역 도시인 린츠를 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영국 웰컴재단은 '사이아트'라는 슬로건을 들고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나 예술가를 지원한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의욕적인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의 궁극적 목표가 개인의 창의성을 높여 창의력을 십분 발휘하여 우리 사회를 창조사회로 만드는 것이니만큼 국가차원에서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질 시점이다.

KAIST문화기술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