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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가는 길 순탄하도록 한땀… 한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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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가는 길 순탄하도록 한땀… 한땀…

입력
2013.08.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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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에 위치한 한 소박한 집. 한여름 햇볕에 삼베를 말리는 백발 부부가 있다. 한평생 수의를 지어 온 한상길(86) 할머니와 남편 김문경(88) 할아버지다. 27일 오전 7시 50분 KBS 1 '인간극장'에서는 삼베 손질에서 수의 제작까지 수작업으로 전통수의를 짓는 '상길 할머니의 만가(輓歌)'편이 전파를 탄다.

할머니는 일곱 살 처음 바늘을 쥐었고 9세 때는 손수 저고리를 지었다.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바느질이 일생의 업이 됐다. 할머니는 삼베옷, 모시 적삼 등 모든 옷을 손수 한 올 한 올 풀을 먹이고 말려 입는 정갈한 어르신이다. 할머니에게 옷이란 바로 정성이다. 수의는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아침에 짓기 시작한 수의는 그날 해가 지기 전에 마쳐야 한다. 어두우면 저승길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수의 바느질은 어떤가. 실을 중간에 잇지도 않고, 되돌아 뜨지도 않는다. 저승 가는 길이 막힘 없이 순탄하라는 우리 선조들의 깊은 뜻이 담겼다.

팔순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주의자 할머니. 20여 년간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할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은 작은 며느리는 환갑을 앞두고도 시어머니의 매서운 눈을 피할 수 없다. 바늘땀 하나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꼼꼼한 성격의 할머니지만, 할아버지 앞에만 서면 열 여섯 살 소녀가 된다. 할아버지는 수의 짓는 할머니 곁에 선풍기도 놓아 주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 봐주는 낭군님이다. 하지만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후 치매 증상이 시작되면서 할아버지는 종종 집 밖을 나선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찾아 다니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점점 쇠약해지는 할아버지를 보는 할머니의 소원은 단 하나, 한날 한시에 같은 길을 떠나는 것이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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