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필리핀 여성 M(28)씨는 인천공항 입국 게이트를 통과했다. 연예기획사는 그녀에게 한국에서의 가수 생활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녀가 팔려간 곳은 경기 평택시 대추리 미군기지 앞 유흥업소. 영락없는 인신매매였지만 그에겐 도움을 청할 사람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여권을 빼앗기고 클럽 지하 숙소에 감금당한 그녀는 미군들 앞에서 춤 추고 술 팔고 때로는 몸도 팔아야 했다. 14개월 후 M씨는 임신을 했다.
강제 낙태를 피해 어렵사리 업소를 탈출한 M씨에게 손을 내밀어준 곳이 공익법률재단 '공감'이다. 공감 측은 업주를 상대로 한 민ㆍ형사소송을 벌여 지난 해 4월과 올 6월 일부승소했고, 업주는 성매매알선법과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벌금 6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인신매매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항소를 포기한 M씨는 아이를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공감'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소라미(39) 변호사는 "국내 인신매매법은 적용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정부의 단속ㆍ방지 의지도 약해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그 현실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13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감 사무실에서 만난 소 변호사는 "일반 변호사는 송무 중심으로 일하지만 공익전담변호사는 제도개선에도 깊이 관여한다"며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인 만큼 필리핀 여성들이 경계심을 느끼지 않도록 수녀님과 함께 동두천 업소를 돌아다니며 실태를 파악하고 시민단체, 정치권과 긴밀히 협력하며 관련법 개정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국회에는 그녀의 의지가 담긴 '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률안'이 상정돼 있다.
공익전담변호사가 늘고 있다. 공익전담변호사는 영리 활동을 하지 않고 오직 정의와 인권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다. 현재 비영리 로펌과 시민단체 상근변호사, 개인 공익법률사무소를 차려 활동하는 공익전담변호사 수는 약 20여명. 실망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나마 최근 2년 새 10여 명이 증가한 숫자다. 7월 현재 한국에는 1만5,833명의 변호사가 있다.
2009년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원인불명의 병으로 김재왕(35) 변호사는 시력을 잃었다. 김 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인 상담원으로 일하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어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는 법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공익전담변호사다.
이은혜(31)변호사는 지난 2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이주여성과 외국인노동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아시아의 창'의 상근 변호사가 됐다. 이 변호사는 "판검사 시보를 했지만 위계적인 조직 생활이 성미에 안 맞고, 변호사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해야 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시민단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공익전담변호사가 늘어난 것은 우선 변호사 수가 늘었고, 사회의식의 변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자는 지난 2001년을 기점으로 매년 1,000명 가까이 배출됐고 2012년에는 로스쿨이 생기며 연간 2,000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공감'의 염형국(39)사무총장은 "변호사 자격증을 신분상승의 도구가 아니라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보는 이들이 늘었다"며 "거창한 각오나 대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공익전담변호사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세청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2011년 변호사 1인 평균 수입'은 4억4,400만원. 변호사 벌이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그 정도다. 국선전담변호사도 대법원에서 월 800만원의 보수와 사법발전재단에서 사무실 임대료 등 운영비를 지원받는다.
시민들의 후원에 의존하는 공익전담변호사 월급은 약 200만원. 그마저도 사무실 임대료와 인지대, 송달료 등 업무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수중에 남는 돈은 180여 만원에 불과하다. 얇은 월급봉투 대신 그들이 찾는 것은 보람과 낭만이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를 공론화 한 시민단체 '반올림'의 임자운(34) 상근 변호사는 "공익변호사라고 하면 투사처럼 생각하거나 뭔가 비장하고 힘겨운 일을 한다고 치켜 세우기도 합니다만 실제로는 사람들과 똑같이 부대끼며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남보다 조금 더 애쓰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희귀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남편 집 앞에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냥 친해져서 형, 형 하고 불러보고 싶었죠.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 공익전담변호사를 합니다."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시국사범을 변호한 인권변호사, 80년대 노동자들을 변호한 노동변호사가 있었다. 하지만 전업이 아니라 조직화 체계화에 한계가 있었다"며 "미국에는 2만여 명의 공익전담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構?사회의 모순을 고치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롭고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공익전담변호사는 우리사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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