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활동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1952년 발표한 로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 간 의사소통 관습을 무시해 언어의 한계와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드러낸 부조리극의 대표작이다. 부조리극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혼란상에 연관돼 있다고 해석된다. 이 때문에 베케트에게는 공허와 절망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공공연한 평가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알랭 바디우(79)는 강연과 기고문 등을 엮은 비평집 에서 "베케트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버려진 실존 속으로의, 희망 없는 포기 상태 속으로의 그런 어둡고 육체적인 함몰이 아닐"뿐더러 "베케트의 모든 재능은 거의 과격할 정도로 긍정을 지향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질 들뢰즈가 쓴 베케트의 TV 단편극 해제 은 등장인물을 "모든 가능성을 소진하는 자들"로 정의하는 데 이 소진된 상태는 좌파 철학자들에 의해 오히려 창조와 잠재성의 역량으로 재해석됐다. 반전의 해독을 담은 두 권의 책이 이번에 국내에서 동시 출간됐다.
바디우는 에서 처음에는 세속적 평가처럼 베케트를 오해했지만 베케트를 진지하게 검토하면 할수록 허무함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절도와 엄밀함과 용기의 교훈"을 얻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베케트의 작품을 관통하는 서사의 파괴가 현실을 구성하는 언어적 관습에 대항하는 엄격한 지적 탐색이라고 지적한다. 바디우는 베케트가 만들어낸 무(無)의 상태는 곧 "내가 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일 것인가? 내게 목소리가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며 여기에서 진리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후 1960년 이후 작품들은 심지어 베케트를 사랑과 행복의 작가로 재정의하게 한다. 바디우는 감상적이거나 성애로 점철되지 않은, 순수한 만남과 우연한 여정만 있는 사랑의 장면들을 읽어내며 이런 사랑이 곧 인간 존재의 행복과 타인에 대한 열림이라고 해석한다. 바디우는 특히 여기에서 자신의 입장을 겹치며 주장한다. "예술의 임무는 모든 진리가 기원하는 이 예외적인 지점들을, 우리의 인내가 재구성해 낸 조직물 안에 간직하고 붙들어, 별처럼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들뢰즈의 은 베케트의 인물들이 "모든 욕구, 선호 목적 혹은 의미를 다 단념해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한 자"라고 지적한다. 번역자인 이정하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교수는 해제를 통해 이런 상태가 오히려 새로운 '가능한 것'의 체제의 창조로 향하는 토대라는 정치적 해석을 소개한다. 이 책은 들뢰즈의 글과 이 교수의 해제를 동등한 비중으로 실어, 독자가 가로질러 읽으며 엄밀히 독해하도록 이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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