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기품 있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기품'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것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기품이라는 말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을 떠올리게 한다. 에는 몰락한 가문의 딸 가즈코와 문학을 공부하는 그녀의 동생 나오지가 등장한다. 나오지는 향락적이고 파괴적인 삶을 살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그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구절은 "저는 귀족입니다"이다. 귀족으로서의 정신적 고결함이 삶을 버리는 순간까지 그의 의식을 강박했던 모양이다. 가즈코는 남동생이 죽자 동생의 스승이었던 우에하라의 정부가 된다. 하지만 우에하라는 그녀를 돌보지 않고 향락적이고 무책임한 생활을 계속한다. 귀족 출신의 가즈코는 우에하라의 난폭한 사랑을 받으면서 굴욕적인 눈물을 흘린다. 가즈코는 결국 유부남인 우에하라의 아이를 낳음으로써 그녀를 괴롭힌 귀족의 의무로부터,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절규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낡은 도덕과 끝까지 싸우면서, 태양처럼 살아갈 작정입니다." 나는 그 문장에서 어떤 기품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기품이란 핑계 대거나 변명하지 않는 태도인 것 같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는 거다. 기품은 여의치 않은 삶의 조건이나 비극적 경험을 거느릴 때 오히려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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