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23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는다. 회담 장소로 금강산을 고집하던 북측이 22일 우리측 제안을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은 이와 함께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열자고 수정 제안했다. 우리 정부가 당초 회담시기로 제시한 내달 25일과는 간격이 있지만 어쨌든 북한이 지난 14일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에 이어 이산상봉과 금강산 문제에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남북간 꼬인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형국이다.
남북관계에서 지난 5년간 볼 수 없었던 북한의 이러한 자세전환은 여러 함의와 속내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대외적으로 대화의지를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사안을 놓고 회담장소 문제로 옥신각신하기 보다는 신속하게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나 노동신문을 통해 연일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관계를 북미ㆍ북중 관계개선의 징검다리로 삼는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수정 제안은 북한의 대폭적인 양보가 돋보인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와 함께 경제건설에 대한 북측의 적극적인 의지로 볼 수 있다. 수정 제안에 대한 북한의 무게 중심이 이산가족 상봉보다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3월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이후 경제부문에서 개방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있지만 외자유치가 여의치 않아 뚜렷한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금강산 관광은 개성공단과 함께 이 같은 난국을 헤쳐나갈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북한은 과거 금강산 관광을 통해 연간 4,0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또한 금강산 관광은 남북관계와 국제사회에서 갖는 상징성이 크다. 북한이 원산, 백두산, 칠보산 등 다른 지역의 관광 특구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에 앞서 금강산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이유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의욕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원산의 마식령 스키장도 금강산과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회담에 동의하면서 금강산 관광 회담 일정을 앞당긴 것은 두 사안을 어떻게든 연계시켜 동시에 다루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경제건설에 대한 북한의 의욕적인 자세가 핵 억지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려면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이 필수적이다. 북측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어서 향후 논의과정에서 남북간 상당한 힘겨루기가 불가피한 사안이다. 북한이 당장은 남북관계에 주력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정작 중요한 비핵화 요구에 역행한 채 핵 보유 지위를 강조하고 있는 점도 우리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대내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는 것과 달리 그 동안 도발 위협에 집착하다 보니 대외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며 "남북관계에서 대화국면 전환을 통해 중국 등 주변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경제적인 이익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비핵화 논의에 진전이 없는 한 남북간 대화모드를 계속 이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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