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간호는 서로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인간을 다룬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문학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SF의 가공 세계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초자연적 비이성적 판타지의 세계까지 확장되기도 하지만, 결국 작가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이야기, 현실 이야기이다. 간호가 주된 관심을 보이는 대상도 인간이다. 간호 행위는 인간에 대한 돌봄과 진료다. 인간의 신체적 질병에 초점을 두고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며 인간의 건강과 안녕을 증진하는 사명을 갖는다.
두 번째, 둘 다 고통에서 출발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문학의 효용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면 누구나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작가를 명명자(命名者)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삶의 어둠을 말하고, 존재의 어둠을 밝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고통의 내용과 양태가 다르고 그 체감의 한계치가 제각각이더라도 온전히 고통 없는 삶을 누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의 모든 고통이 문학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간호의 대상이다.
세 번째는 둘 다 치유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때로 수치스러운 역사의 진실을 기록해서 고통스럽고 무지와 순응을 폭로해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치유의 과정이다. 간호도 마찬가지다. 칼, 바늘, 기계, 굵은 관, 독한 약품들로 병든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침범하여 공격하는 행위 모두가 지향하는 것은 분명히 치유이다.
실제로 간호는 문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과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의료인이나 의료 행위를 다루는 문학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할 때 간호학적 관점은 매우 시사적인 분석틀을 제공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 김하인의 , 도종환의 시 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을 환자의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 묘사한다. 임종 환자가 죽음을 수용하는 심리과정을 죽음학(thanatology) 연구자 쿠블러 로스가 제시한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로 읽으면 작품의 구조나 성격, 주제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솔제니친의 소설 , 이청준의 소설 등은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를 보여준다. 병원에 처음 온 환자들의 끔찍한 심정, 질병이 인간에게 끼치는 심적 영향,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 심리, 간호사를 보는 환자의 시선, 환자 가족의 심리, 환자와 의료진의 대화 등 병원에서 겪는 상황들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문학은 환자와의 수많은 대화와 다양한 화법으로 가득 찬 의사 소통의 보고다. 문학과의 만남 자체가 타인의 감정이나 의견을 접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학으로서 문학과 간호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간호는 문학을 만나서 간호 본연의 실체를 탐색해 갈 수 있다.
황효숙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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