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초등학교 과학실에서 일했던 A(53ㆍ여)씨는 병을 안고 학생들 곁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찾아와 생을 정리했다. 그가 비정규직이 아니었더라도 같은 결말이었을까.
A씨는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주머니에는 "13년 동안 근무했지만 병으로 인해 퇴직하는 과정에서 비참함과 황당함,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물러나야 하는 나의 삶이 고통의 날을 보냅니다"라는 글귀가 들어있었다. 자살 열흘 전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제출한 민원이다. 충북교육청으로부터 받은 답변서도 있었다. "A님 판단에 의해 퇴직원을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행정처리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과학실무원이었던 A씨는 과학실의 실험 약품과 기자재를 관리하고 수업을 준비하며 수업시간에는 보조교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충북교육청이 교무ㆍ전산ㆍ과학ㆍ발명교실 실무원 등 4개 비정규직 직종을 '교무실무사'로 통합하면서 업무가 크게 늘어 학교와 갈등을 겪게 됐다. 결국 5월 지병인 당뇨가 악화된 A씨는 유급 병가 14일과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한 뒤 6월 말 퇴직했다.
하지만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고용센터에 간 A씨는 무급 병가 46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학교 측에 "무급병가가 있는 줄 몰라 퇴직했다"며 퇴직 철회를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고, 청와대 민원에서도 같은 답을 받았다. 결국 A씨는 두 서류를 주머니에 넣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는 A씨의 자살을 "비정규직 차별이 낳은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충북의 학교 비정규직은 아플 경우 연간 최대 60일의 유∙무급 병가만 사용할 수 있지만, 정규직인 행정직(지방공무원)은 60일의 유급 병가에 1년간 급여의 70%를 받으며 휴직도 할 수 있다.
병가만 차별 받는 게 아니다. 학교 비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1,605만3,000원(평균 근속 5.3년 기준)으로 근속년수가 같은 정규직(2,730만6,000원)의 58.5% 수준이다. 식대 명절상여금 복지포인트 성과상여금 등 각종 수당은 아예 받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받고, 정규직보다 정년이 5년이나 짧은 곳도 있다. 전체 36만명의 학교 비정규직 중 77%(28만명)가 기간제이고 나머지는 무기계약직인데 이들 모두 사업ㆍ예산 축소, 학생 감소 등으로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교육부가 전국 1만1,000여개 초중고를 전수 조사한 결과 올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비정규직 6,475명이 해고 당했다. 조사에서 빠진 영어회화 강사, 학습보조 교사 등까지 합하면 해고자는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많은 교육청에서 비정규직 채용과 해고의 전권을 교장이 쥐고 있다 보니 고용불안이 심하고 이를 볼모로 온갖 잡일이 떠넘겨진다. 학교 비정규직 B(41)씨는 "임신 중이었는데 교장이 정규직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해 전화를 받으라고 해 시간외 수당을 요구했더니 '무료 봉사하라'고 하더라"며 "차 심부름은 기본이고 수업 중에도 교장이 불러 은행업무, 골프여행 항공권예매 등을 대신한 적이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A씨 자살에 대해 충북교육청은 "A씨가 무급 병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입장이다. 해당 학교가 지난해 2월 병가 일수 등의 내용이 포함된 인사관리규정을 개정하며 A씨 등 전체 직원의 서명을 받았고, 지난 3월 직종 통합 당시에도 인사관리규정을 첨부해 서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동산 학교비정규직본부 정책기획국장은 "서명을 했다 해도 내용이 많고 인사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아 노동자 대부분이 자신의 구체적인 권리가 뭔지 모른다"며 "비정규직도 질병 휴가ㆍ휴직제도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비정규직본부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교육부에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직종통폐합 중단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에 돌입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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