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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8월 22일] 댓글 다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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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8월 22일] 댓글 다는 공무원

입력
2013.08.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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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일부 대기업 정규직과 함께 청년세대에겐 선망의 직종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행정고시를 거쳐 탄생하는 고위공무원을 제외한다면, 9급시험이나 7급시험은 십 년 전만 해도 별다른 야심 없이 소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선택지였고 일부에선 시시한 직업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인을 통해서든 SNS를 통해서든 겪어본 바로는 공무원이 된 이들도 자신의 삶에 그리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공무원이 선망의 직종이 된 건 그들의 처우가 좋아져서라기 보다는 그 바깥 세상이 워낙에 험악해져서인 측면이 크다. 그들은 '노아의 방주'에 올라탔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방주 안도 갑갑하고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행정고시를 통과한 5급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행시 합격자들이 교육기간 중에 마치 군인처럼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것'이란 요지의 정신교육을 받는다는 전언을 들으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향후 인생을 생각하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은 월급'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대체로 과도한 업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자조도 오랜 말이긴 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된 시대에 그들은 내면을 더 철저하게 통제당해야만 한다.

국정원 선거개입 및 정치개입 의혹 관련 청문회를 보면서 종종 나보다는 훨씬 삶의 형편이 나을 그들의 처지에 동정이 갔다. 새누리당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댓글을 '직원 개인의 정치적인 의사 표현'으로도 옹호했고 '국정원 통상 업무인 대북심리전'이라고도 옹호했다. 사실 두 개의 관점은 양립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이 양립할 수 없는 견해를 당연시할 수 있는 정서의 핵심에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상이 있다. 그들의 생각에는 공무원의 사적인 의사표현은 마땅히 상사의 의중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일 게다.

전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나는 공무원들이 업무상 정치적 편향성을 발휘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보지만 업무 이외의 시간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노동조합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정당에 가입해서 당비를 납부하는 일에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한국 사회에선 이러한 '정치적 자유'가 편향적으로 보장된다. 교사든 공무원이든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진보정당에 당비를 납부한다면 자신의 안정적인 '밥그릇'을 걷어차일 각오를 해야 한다. 직업군인이 대통령을 비난하다간 그걸 본 누리꾼이 빡쳐서 신고를 하고 수사를 당하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교장 교감이 새누리당에 후원금을 납부하거나 경찰공무원이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수사 결과를 왜곡하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편향적으로 보장되는 자유 중 부당한 것들은 시정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국정원 댓글의 문제는 그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공무원들이 기관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댓글을 다는 것도 내면을 통제당하는 일일 것이나, 이번 문제는 공무원이 아닌 일반 시민의 의견인 척 특정 정치성향을 표출함으로써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국민여론을 날조한 일이다. 북한이 아닌 시민을 향한 '심리전'이었고 정확히 말하면 사기극이다. 이름을 감추고 썼고 모든 자료를 제출하지도 않았으며 상당 부분 지웠기 때문에 내용조차 정확히 모른다. 정황과 수준을 보면 정부 정책 비판하면 모조리 종북이고 호남이라고 달았을 태세인데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검증도 못 했다.

하지만 그것도 업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종북세력'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해 제 신분을 속이고 남을 비난하는 댓글이 더 권장되어야 한다는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에 대해 뭐라 할 것인가. 게시판에서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말을 보면 '알바냐'라고 묻는 게 지금까지의 어법이었다면, 앞으로는 '공무원이냐'라고 묻는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른단 생각에 서글프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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