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지니계수보다 주택ㆍ부동산 자산 지니계수 훨씬 높아, 효과 즉각적인 전월세 상한제 여야 이견에 발목, 계약기간 연장ㆍ전월세상한제 등 세입자 대항권 확대해야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사는 노모(30)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전세 만료 열흘을 앞둔 8월 중순 주인이 집이 팔렸다며 갑자기 “집을 비우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 1억3,000만원짜리 39.6㎡(12평)에 동생과 함께 살던 노씨는 주변 전셋값이 계속 오르자 주인에게 2,000만원을 올려주겠다고 먼저 제안했고 재계약이 될 걸로 생각했었다. 노씨는 “집주인이 세입자 권리를 아무렇게나 묵살해도 된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2013년 대한민국이 다시 전세난에 휩싸이고 있다. 2011년 10% 이상 전셋값이 올라 홍역을 치른 후 지난해는 잠시 안정세를 보이다가 올해 상반기에만 전셋값이 3% 이상 오르자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올해에는 초저금리에 시달리는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경우가 크게 늘면서 무주택자의 주거비용이 급등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월세 세입자의 주거 비용은 전세보다 연간 970만원이나 더 높다.
우리나라 주거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소득과 부동산자산 지니계수(0은 완전평등, 1은 완전불평등을 의미ㆍ통상적으로 0.4가 넘으면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를 비교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소득 지니계수는 2000년 0.39에서 2010년 0.46으로 소폭 높아진 반면 부동산자산 지니계수는 같은 기간 0.62에서 0.70으로 증가했다. 부동산자산 지니계수가 소득 지니계수보다 훨씬 높은데, 소득이 낮아질수록 주거수준은 더 급속히 더 열악해진다는 의미다.
주거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감지한 정부는 28일까지 전월세난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전세대출 한도와 월세 소득공제 확대 등 금융 및 세제지원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성 확보에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국가 등 공공이 나서 저렴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예산의 제약과 주택 입주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급한 불을 끄기에는 한계가 있다. 전월세 소득공제 제도는 임대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공제한도도 300만원이어서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저소득 월세 세입자들은 월세 상승으로 최저생계비마저 위협받고 있는 만큼 이들 계층에 대해서는 소득공제를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복지권을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독일 등 유럽나라들처럼 주거권 인정을 담은 주거복지보장기본법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 관련 법률은 주택법과 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둘 다 주거복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주택을 가진 사람들이 재산권을 행사할 때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세입자의 주거권”이라며 “우선 부당한 계약에 대항할 수 있도록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부여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입을 놓고 여ㆍ야가 팽팽하게 대치중인 전월세 상한제 역시 주거권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세입자 권리 보호를 위해 재계약 때 임대료율 상한을 두고 계약갱신청구권 부여를 요구하고 있는데, 새누리당과 정부는 집주인들이 제도 도입 이전에 보증금을 올려 전월세난을 더 부채질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1989년 전세계약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임대차보호법 개정 때도 도입초기 전셋값이 오르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이후 전세값 안정에 도움이 됐다”며 “전월세 상한제 역시 도입 초기 부작용은 장기적으로 보면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기간을 현행 2년에서 더 장기화하려는 움직임도 주거권 강화 대책으로 볼 수 있다. 올해 말부터 시행되는 준공공임대주택제 역시 주거권 강화정책이다. 준공공임대주택으로 등록된 주택은 최초 임대료와 임대보증금을 주변시세를 고려해 국토교통부령에 따라 산정한 시가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대신 준공공임대주택 소유주에게는 각종 세제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정착된 프랑스와 달리 우리나라는 임대료와 보증금이 정확히 산정했는지 심의할 위원회가 없다.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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