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직장인 최모(34)씨는 붓던 적금까지 깨 마련한 1,500만원을 산업은행 다이렉트하이정기예금에 넣었다. 4.5% 고금리에 혹했던 것. "산은이 소매금융 부문을 키우고 있어 앞으로도 금리가 더 높은 곳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직원의 호언장담에 최씨는 남편(3,000만원)과 친정 어머니(1,000만원)까지 다이렉트 상품에 들게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금리는 2.95%로 쪼그라든 상태. 더구나 산은이 민영화를 철회하기로 하면서 개인고객 특판 등 혜택도 더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최씨는 재예치를 포기했다. 그는 "예금뿐 아니라 각종 공과금, 보험료 등을 관리하는 주거래은행으로 바꾸기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개인 고객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고금리를 내세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산업은행의 '다이렉트예금'이 효자상품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강만수 전 회장 시절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공격적으로 나섰던 소매금융 확장전략이 박근혜 정부의 '산은의 정책금융 회귀, 민영화 중단' 조치로 올 스톱됐기 때문이다.
인터넷 가입 기반의 다이렉트 뱅킹은 2011년 9월 출시됐다. 무(無)점포로 인건비와 점포 유지비를 줄이는 대신 고객에게 경쟁사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 금리로 돌려주자는 전략은 적중했다. 덕분에 출시 7개월 만에 1조원의 예금을 끌어들였고 올 3월에는 9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산은과 정책금융공사를 재통합하고 민영화를 전제로 만든 KDB금융지주를 해체하기로 결정(본보 20일 13면)하면서 다이렉트 상품은 역(逆)마진만 내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가입자들은 혼란에 빠졌고, 애먼 피해를 입게 됐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역마진, 시장질서 교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고객 유치를 위해 고금리 전략을 쓰더니, 이제 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 금리를 다른 은행과 비슷하게 내리고 소매금융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적어도 경쟁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보장한다든지, 개인 고객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상황 설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렉트 상품의 축소로 혼란을 겪는 건 산은 고졸 계약직 행원들도 마찬가지. 민영화를 염두에 둔 점포 확장과 다이렉트 예금 확대가 고졸 행원 채용의 밑거름이었기 때문. 2011년 90명, 지난해 120명을 뽑을 만큼 채용 규모도 컸고, 계약직의 정규직화 바람과 맞물려 2011년 입사한 고졸 계약직들은 올해 초 모두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는 행운도 누렸다.
그러나 점포 신설 중단(현 82개)과 다이렉트 예금 축소로 올해는 고졸 채용이 20명에 그쳤다. 지난해 계약직으로 들어온 고졸 행원들은 내년에 정규직 전환 대상인데, 100% 혜택을 볼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산은은 이미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개인 예금 대출 확대 등) 민간영역에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인데 아무 철학 없이 무작정 정책금융기관으로 돌아서버리면 정책금융의 독점 및 민간금융시장질서 교란이라는 문제만 되풀이될 뿐"이라며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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